[근대경제사] 식민지 시대와 세계화의 관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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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근대경제사] 식민지 시대와 세계화의 관련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가. 일본의 근대화 정책과 현재 세계화 방향의 차이점
1. 교육 정책
2. 언어 정책
3. 농업 정책
1) 토지조사사업
2) 산미증식계획

Ⅲ. 결론
본문내용
가. 일본의 근대화 정책과 현재 세계화 방향의 차이점

1. 교육 정책
교육 제도적 측면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강제적, 지역적 세계화의 움직임은 계속되었다. 일제는 조선인에게 시행할 교육을 대별하여 보통교육, 실업교육, 전문교육으로 한정해서 다음과 같은 목적에 따른 교육 정책을 실시하였다.
첫째, 일제주도하의 관립학교 교육을 통해 전통교육을 배제함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는 교육에 대한 중앙집권적 통제를 위해 사립학교의 설립과 운영을 어렵게 하여 이를 탄압하고, 관립학교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했다. 통감부는 사립학교령과 서당규칙을 제정하여 민족교육을 탄압하였다. 또한, 1938년 이후부터는 더 이상의 사립중학교의 설립을 불허하였다. 1938년부터 1943년에 이르기까지 공립중학교를 17개교, 공립고등여학교를 22개교를 신설하면서도 사립중학교의 설치를 억제하였다.
둘째, 보통교육은 보통의 지식, 기능을 교수하며 고등교육을 배제함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는 외국어학교를 폐지하여 한민족의 해외진출과 교류를 억제하고자 하였고 성균관을 폐지하여 경학원으로 대치하여 고등전통교육을 말살하려 했다. 한편, 1919년에서 1935년 사이에 보통학교가 양적으로 크게 팽창하였다. 보통학교는 1면 1교의 계획으로 시작하여 1면 3교의 계획이 시행되어 1919년에 5백 여교의 약 8만 5천명에서 1935년에는 약 2천 3백 교의 68만 여명으로 증가하였다. 보통학교의 경우 한국의 역사와 지리과목을 독립교과로 인정획이 않고 일어독본과 국어독본에 포함시켜 교수하도록 하였다. 또한 일제는 한국민의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잠재우목을위해 대학교육 및 그 예비교육에 대한 조항을 신설하고, 수업연한은 예과 2년, 본과 3-4년으로 하는 남녀공학인 경성제국대학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경성제국대학이 민족운동의 본거지가 될 것을 두려워하여 정치, 경제, 이공 등의 학부 설립을 기피하고 법문학부와 의학부만을 설립하는 등 정치적 배려를 가하여 식민지 대학으로 머물게 하였다.
셋째, 실업교육은 농업, 상업, 공업에 관한 지식, 기능의 보급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는 한국 민을 일제의 명령을 잘 따르고 시행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의식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교양교육은 피하고 저급한 실업기능교육을 시키고자 했다. 일제는 기존의 교육을 ‘독서교육’이라고 비판하고, 1929년 보통학교 교육과정을 개정하여 ‘직업과’교과를 도입했다. 이 당시 보통학교 교육과정은 풀베기, 가축 돌보기, 실습지 청소, 판매 등의 노력봉사의 수준에 머물렀다. 또한 1920년대 일제가 설립한 간이학교는 수업 연한 2년에 80명 정도의 1개 학급만을 설치할 수 있는 학교로, 교과시수의 1/3이 직업훈련으로 구성되어있었으며, 교과 과정이 고등교육으로 이어지지 않는 종결교육기관이었다.
이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교육목적의 궁극적 의도는 고등교육, 인문교육의 기회를 박탈하여 한국 국민의 의식 발달을 막고, 보통교육이나 실업교육을 통해 그들의 통치에 잘 순응하는 일본 천황의 충성스러운 신민과 저급 수준의 생산노동자를 양성하겠다는 의도였다.
일제 강점 하에 시행되었던 강제적인 교육은 피식민지 민족에게 본국의 언어를 강요하고, 고유문화를 파괴하며, 나아가서는 민족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동화주의(Assimilation)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동화주의를 기반으로 한 교육제도의 시행은 조선어인 한글 사용을 금지하고 일본어만을 사용하게 하는 정책으로 발전하게 된다.
교육제도에 대한 일본의 근대화의 영향을 평가해보자면, 일본의 식민지 아래에서 실업교육과 직업교육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것을 교육제도의 근대화의 시초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교육계에서는 이미 조선 후기부터 실학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기 시작했으며, 일제의 강압 속에서도 민족계몽운동을 펼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일제의 식민지로서 받은 교육은 신식 학문을 접할 수 있는 기회였다기보다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좀 더 수월하게 하기 위한 우민화교육에 불과했다. 일본이 내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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