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중세사] 위진남북조의 신분제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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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동양중세사] 위진남북조의 신분제에 대해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본론
1.국가적 신분제의 재검토
2.良賤制하 신분 질서의 구조와 기능
Ⅲ.맺음말
본문내용
Ⅰ.머리말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가 필요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요소는 국민, 즉 민중이라 할 것이다. 그러한 국가의 근본이 되는 국민을 효율적으로 통합하여 국가를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신분제가 중요하게 대두된다.
魏ㆍ晋 南北朝 시기에도 이것의 중요성을 일찍이 깨닫고 제도적으로 정비하여 국민을 통솔한 듯 한데, 여기에서는 그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려고 한다.
위진 남북조를 틀로 하되, 북조 시기를 주 대상으로 하여 종래 논쟁점의 하나였던 良奴ㆍ良賤制 문제를 재검토하여 이 시기의 국가적 신분제가 양노제가 아닌 양천제였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다음으로 이 분야의 연구에서 미진하였던 양천제 하의 내부적인 신분 질서의 구조와 기능 및 이 시기 가장 독특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 하층신분 질서의 형성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Ⅱ.본론
1.국가적 신분제의 재검토
종래 위진 남북조를 보는 시각은 良奴制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여기에서는 우선 그 주장의 근거로서 주목된 사례부터 분석하기로 한다. ‘무릇 양노비 10여만 인은 일없이 놀고 있는데, 양민에게 세금을 거두어 이들에게 지급하게 되어, 매년 5ㆍ6여만의 비용이 든다. 마땅 이들을 방면하여 庶人으로 삼아 양식을 주어 關東의 戍卒을 대신하게 하여 北邊의 亭塞를 넘어 망보게 한다.’라는 사례에 의하면 前漢말 이미 奴婢와 대비된 신분 용어로서 양민이 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뒤의 ‘방면하여 서인으로 삼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노비는 양민 외에도 서인과도 대비되어 있다. 더욱이 노비를 해방하는 경우 그 명칭을 서인으로 기술하고 있기 때문에 노비와 대비되는 법제상의 신분 용어는 서인이 일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여기에 노비와 대비된 신분 용어로서 서인 외에 양민도 사용되고 있는 것은 노비에 대립된 법적 신분 용어가 서인에서 양민으로 이행되어 가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반영한다고 생각된다. 그러면 노비에 대비된 신분으로서 서인에 대신하여 양인ㆍ양민이라는 용어가 정식으로 등장하는 것은 언제부터일까?
‘後漢書’ 卷34, 梁冀傳과 ‘三國志’ 卷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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