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사] 1970년대 시대구분논쟁에서의 중세와 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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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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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1970년대 이전의 시대구분
Ⅲ. 1970년대의 시대구분논쟁
(1) 金哲俊, 「韓國 古代社會의 性格과 羅末, 麗初의 轉換期에 대하여」 (2) 姜晋哲, 「高麗 田柴科 體制下의 農民의 性格」
Ⅳ. 맺음말

본문내용
Ⅱ. 1970년대 이전의 시대구분
1931년에 나온 최남선(崔南善)의 『조선역사(朝鮮歷史)』는 일반에 한국사를 보급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 책이다. 시대구분을 왕조사의 관점에서 한국사를 上古 (高麗以前)-中古 (高麗時代)-近世 (朝鮮時代)-最近 (興宣大院君-韓國倂合)의 네시기로 구분 하였다. 그러나 최남선은 상고시대(上古時代)가 통일신라말(統一新羅末)에서 끊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또한 중세가 고려시대에 국한해서 발전된 것에 대한 뚜렷한 설명도 나타나지 않으며 뒤에 나타나는 근세(近世)의 시작과 전개과정 문제도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이기백(李基白)은 최남선의 시대구분을 왕조중심으로 파악하면서 ‘신라는 삼국시대부터 계속해오던 국가이기 때문에 삼국통일로서 끊는 것은 부적당하고 단순히 고려와 신라를 다른 왕조이기 때문에 이를 신라와 같이 한 시대로 볼 수 없다고 한 것은 왕조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기백 「韓國史 時代區分 問題」,『韓國史時代區分論』, (을유문화사, 1970), p.11

백남운(白南雲)은 1933년 『조선사회경제사(朝鮮社會經濟史)』와『조선봉건사회경제사(朝鮮封建社會經濟史)』를 저술했다. 이 두 책에는 세계사적 발전 법칙이 한국사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어 있다는 백남운의 견해가 드러나 있다. 백남운은 『조선사회경제사』에서 "한 민족의 발전사는 그 과정이 어찌하여 아시아적이라 하더라도 사회구성 내면의 법칙 그 자체는 완전히 세계사적인 것" 백남운, 『朝鮮社會經濟史』, (동문선, 2004)
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백남운은 마르크스의 사회단계설 마르크스의 사회발전단계설은 인류역사가 발전해온 과정을 원시공동체사회(原始共同體社會)-고대노예제사회(古代奴隸制社會)-중세봉건사회(中世封建社會)-근대자본주의사회(近代資本主義社會)의 단계적인 순서로 발전한다고 보았다.
에 영향을 받아 그것을 한국사에 적용하여 '原始氏族社會-原始部族國家(古朝鮮, 三韓)-奴隸國家(三國時代, 統一新羅)-東洋的 封建國家(高麗, 朝鮮)-移植資本主義(日帝下)'라는 시대구분을 제시했다. 백남운이 제기한 노예제사회론 이후 한국사 시대구분론은 한국사에 있어서 노예제사회의 존재 유무와 그 시기 설정에 대한 문제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백남운의 시대구분은 전석담(全錫淡)에게 비판받는다. 전석담은 한국사의 발전도 세계사적 역사법칙에 의해 발전을 거쳐 온 것은 사실이지만 백남운의 시대구분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법칙을 한국사에 적용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고 하였다. 전석담은 백남운의 의견은 한국사 안에서의 일반성과 특수성을 옳게 파악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했으며, 추상적인 일반 법칙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데 있어 너무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즉 전석담은 한국사 발전과정에 나타났던 사회의 성격규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마르크스적 발전식을 도입하여 억지로 꿰어 맞춰 시대를 구분하였다고 비판한 것이다.
참고문헌
연대기자료
高麗史
朝鮮王朝實錄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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