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통치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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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통치체제에 대한 자료입니다.
목차
1. 5부체제의 성립과 운영
(1)5부체제의 성립
(2)5부체제의 확립
(3)5부체제의 운영
2. 중앙집권적 국가체제의 정비
(1)중앙집권력의 강화
(2)율령의 반포와 국가체제의 정비
3. 왕권의 쇠퇴와 정치운영체제
4. 통치조직의 정비
(1)중앙통치조직
(2)왕도 및 지방통치 조직
(3)군사조직의 정비
본문내용
고구려의 통치체제

1. 5부 체제의 성립과 운영
(1) 5부체제의 성립
-압록강 및 동가강 유역에서 성립되어 있던 고구려 고구려족의 기원은 맥족의 한 갈래로 파악하고 있다. 강맹산(1990)"고구려의 5부",[동방학지]69집,연대동방학연구원
중심의 연맹체 1970년대 이전에는 부족동맹(연맹)을 거쳐 고대국가 혹은 정복국가(노예제국가)로 발전되었다는 견해와 씨족사회가 오래 지속되어 국가는 늦게 성립되었다는 견해로 나뉘어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전자 채택. 김용선(1980) “고구려 유리왕 고(考)”,[역사학보]87집,역사학회

초기에는 결속력이 미약하여 각 집단 간 상쟁 =>주몽을 시조로 하는 집단이 주도권 장악
->연맹체 결속력 강화. 연맹체 지배 세력은 중앙 귀족으로 편입, 중앙 지배집단으로써 5부 체제 형성.이러한 과정은 다수의 나집단이 성장, 통합되면서 나국으로 성장하고 다시 나국 간 통합, 발전을 통하여 보다 큰 단위정치조직체가 형성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보다 큰 단위정치조직체를 나부로 파악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나부 내에는 나집단, 나국, 나부의 3단계로 분화된 정치집단이 존재하였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여호규(1992) “고구려 초기 나부통치체제의 성립과 운영”,[한국사론]27권 서울대 국사학과

(2) 5부체제의 확립
① 5부- 계루부: 왕실 형성 소노부: 전 왕족 절노부: 왕실과 혼인 순노부, 관노부 삼국사기의 기록에는 왕실은 교체가 없이 단일 왕조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이름 또는 별칭에 해(解)를 사용하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고 삼국유사에서는 분명하게 주몽과 5대 태조왕 이후를 고(高)씨 성의 왕으로 2대 유리왕부터 대무신왕, 민중왕, 모본왕에 이르는 초기 왕들은 해씨성을 가진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것을 김용선은 고씨성은 계루부와, 해씨성은 소노부와 관련이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이(異)성왕의 존재를 왕실과 결부시켜 해석하지 않는 견해도 있다. 김현숙(1994)“고구려의 해씨왕과 고씨왕”[대구사학]47호 대구사학회

② 5부 체제: 각각의 정치집단이 지배자공동체를 형성하여 정치운영
태조왕 대에 성립. 계루부가 정치적 주도권 장악, 왕위세습 확립한 시 기. 비슷한 시기에 고씨 왕권 성립. 김용선, 같은 논문

(3) 5부체제의 운영
- 계루부가 왕위세습권 장악하면서 여기에서 고구려에는 주몽 혈통의 고씨왕조와 유리왕 혈통의 해씨 왕조가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김용선, 같은 논문.
지배력은 한층 강화, 그러나 각 부는 독자성 유지. 나국 간의 통합은 정복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때 사용된 병력은 중앙정부의 지령에 의해 운용되기는 하지만 병력자체는 개별 나부가 보유한 것이었다. 이를 보아 나부들은 중앙의 지령을 받지만 병력운용 등에 있어 독자적인 권한을 소유하고 행사했다고 볼 수 있다. 여호규, 같은 논문.

- 계루부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상위 지배기구와 유력 왕족, 각 부의 장들도 직속 지배기구를 소유한 이원적 지배 체제.
-제가 회의: 정치 사안에 대해 왕의 단독 결정이 아닌 각 부의 장(=제가)들이 모여 논의 하고 결정하도록 한 모임. 제가회의의 제가는 본래 주몽이 부여에서 남하할 당시 압록강 유역에 독자적인 세력을 가지고 있던 군장국가의 장인 군장들을 고구려 세력하로 편입시키는 과정에서 부여된 신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제가들은 대가와 소가로 나뉘었으며 신분과 권력상에서 차이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금경숙(1994) “고구려 초기의 중앙정치구조- 제가회의와 국상제를 중심으로”,[한국사연구]86권,보진재

-간접지배체제: 각 제가들의 지방 통치로 중앙의 관리파견 불가능. 5부체제 통한 간접지배 방식.
-읍락: 사회편제의 기본단위. 읍락 유력자인 호민(豪民), 일반 읍락민인 하호(下戶) , 비자유민인 노복(奴僕) 으로 구성.

참고문헌
강맹산(1990) "고구려의 5부",[동방학지]69집,연세대학교 동방학연구소
김용선(1980)“고구려 유리왕 고(考)”,[역사학보]87집 역사학회
여호규(1992)“고구려 초기 나부통치체제의 성립과 운영”,[한국사론]27권,서울대 국사학과
김현숙(1994) “고구려의 해씨왕과 고씨왕”,[대구사학]47호,대구사학회
금경숙(1994)“고구려 초기의 중앙정치구조- 제가회의와 국상제를 중심으로”,[한국사연구]86권 보진재
금경숙(1995)“한국학의 쟁점 /전기소설의 제문제 ; 고구려 전기의 관제 고찰”, [민족문화연구]28호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이종욱(1982)“고구려 초기의 지방통치제도”,[역사학보]94집 역사학회
박경철(2003)“고구려 이종족 지배의 실상”,고려사학회 학술대회(한국사의 특수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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