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마루 기대승 퇴계와 4단 7정 논쟁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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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리학의 마루 기대승 퇴계와
4단 7정 논쟁을 중심으로
1.논쟁은 왜 시작되었는가?
고려 말 회헌 안항과 상당 백이정에 우ㅢ해서 주자학이 도입된 이래 거의 200여 년의 시간이 흘러 회재 이언적과 화담 서경덕, 퇴계 이황 등 거유 석학들이 잇따라 나타남으로써 조선 시대의 주자학은 비로서 착근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시기의 신유학은 단순히 사상계만을 지배했던 것이 아니라 국가 통치의 기본 이념으로서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명실공히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이념으로 각광받게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주자학이 사상계를 독점하게 된 것은 결코 우연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사실 조선 시대의 주자학은 발생 초기부터 일정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중국의 경우처럼 주자학 발생의 전제 조건이 되는 자연 과학이나 경제적 토대 등 사회적 제조건이 충분히 조성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통치 이념으로서의 기능을 무척 중시했던 신진사대부들에 의해 불교를 태체하는 일종의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선 초기의 주자학은 형식만 있고 내용은 없는 상태로 엄밀한 학문적 체계나 독자적인 성격을 갖추지 못하고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데 그쳤다고 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은 주자학적 세계관이나 인간관을 전개시키기보다는 주로 국가 통치의 방법으로서의 정치 이론에 관심을 거졌던 것이다.
이러한 초기 주자학의 자기 한계성은 이언적과 서경덕에 이르러 점차 해소되기 시작하지만, 그들은 주로 리기론을 중심으로 자신의 학문적 체계를 수립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곧 세계관과 인간관이 일관성을 지니는 논리적 정합성을 회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중기 주자학의 역사적 성격을 가름하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전환은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이러났던 사칠리기 논쟁에서 비롯 되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니다. 비록 이전에 이언적과 조한보 사이에 있었던 무극태극 논쟁이 있었지만, 이는 도가와 불가 또는 육구연의 입장에서 무극과 태극을 논의하였던 손숙돈과 조한보간의 무극태극 논쟁에 대해 이언적이 일방적으로 잘못된 점을 지적하여 비판하는 현태를 취하고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두 가지 주장이 부딪치는 논쟁으로서의 성격이 약하다. 그에 비해 이황과 기대승 사이에 진행되었던 사단칠정 논쟁은 본격적으로 주자학이 수입되어 연구된 결과 주자학 자체가 지니고 있었던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재정리하는 입장에서 논쟁을 전개한 것이므로, 한국 주자학의 전개 양상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자못 크다 할 것이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사단이라는 개념은 원래 맹자가 성선설의 근거로 제시한 인간 심리 현상 중의 일부를 말한다. 곧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각각 인, 의, 예, 지의 단서로 설명한 데서 비롯된다.
또 칠정은 본래 ‘예기’ ‘예운’편에서 인간의 감정을 통칭하여 ‘희, 노, 애, 구, 오, 욕’으로 지칭한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주자학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대체로 ‘중용’에서 언급한 희, 노, 애, 락의 네 가지 감정을 의미한다. 물론 양자간에 개념적인 차이는 없다. 네 가지로 나누든 일곱가지로 나누든 인간의 감정 일반을 통칭했다는 점에서 동일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각기 의도하는 바가 다른 사단과 칠정을 어떤 관계로 파악하느냐에서 시작된다. 사단칠정 논쟁은 기본적으로 주자학의 틀 속에서 진행된 논쟁이다. 따라서 정확한 분석을 위해서는 주희가 사단칠정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주희는 인간의 심리 현상을 성과 정으로 나우어 설명한다. 다음의 예문을 보면 성과 정의 관계가 비교적 명요하게 나타난다.
정은 성에 근거하고 성이 발하면 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