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리주의는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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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공리주의는 과연 모두를 위한 것인가
목차
1. 공리주의를 논하기 전에
2. 공리주의의 배경과 의미
3. 밀과 벤담의 공리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4. 공리주의의 예
5.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
6. 아이들에게 공리주의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
7. 정리 및 결론
8. 참고문헌
1. 공리주의를 논하기 전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이라는 가장 민주주의적이고 가장 자유주의적인 슬로건은 언뜻 듣기에 너무 타당하여 비판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사상이나 윤리적 주의 같은 학문적 입장에 별 관심을 둘 틈도 없이, 하루하루 먹고 사는 생계에 대한 걱정 때문에 삶 자체가 고단하였던 16·17세기의 중세 유럽 사람들은 더더욱 공리주의를 반겼을 지도 모른다. 물론 공리주의라는 이론이 처음 생겼을 당시에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힘들게 살던 농민과 노동자들의 입장을 대변하기 위한 이론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먹고 사는 것만 생각해온 하층민들에게는 언뜻 반가운 소리로 들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공리주의라는 개념이 점차 퍼지기 시작하고, 이러한 개념에 대한 분석이 이어짐에 따라 비판들이 생겨나게 된다. 이론 자체의 본질에 대한 비판과 이론에 따른 행동인 쾌락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공리주의를 환영했던 하층민들은 물론, 자본가, 농민 등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던 사람들을 실망시켰을 것이다. 모두의 행복을 위해 생겨난 공리주의가 그 후에 생겨난 여러 가지 비판에서 모두를 어떻게 실망시켰는지, 그리고 그러한 비판은 어떻게 생긴 것인지 공리주의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2. 공리주의의 배경과 의미
공리주의가 등장하는 시대적 배경은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이라는 책에도 나와 있듯이, 아담스미스의 이론은 보이지 않는 손(시장의 원리)의 원리에 의해서 사회가 움직이는 자유방임주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자유방임주의로 사회를 움직이다 보니 자본가와 노동자 간에 빈부격차가 엄청나게 나게 된다. 어떠한 시대도 그러하듯이 한번 부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끝없이 노력하곤 한다. 이러한 노력이 부의 세습을 낳게 되고 이러한 세습은 빈부격차를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이다. 당시의 자본가들이 자신의 부를 놓치지 않기 위해 사용했던 가장 흔한 방법은, 하층민들의 노동력을 되도록 싼 값에 쓰려 했던 것이다. 노동한 대가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하층민들은 더욱 가난하여 지고, 그로인해 이익을 더 크게 남길 수 있는 자본가는 더욱 부자가 되는 당연한 현상이 유지되어 빈부격차의 차가 나날이 더욱 커지게 되었다. 그 당시에 영국 청년들의 평균 수명이 20대였다고 할 만큼, 힘든 노동이 싼 값에 이루어 졌던 것이다. 심지어는 아이들이 임금이 싸기 때문에 자본가가 아이들을 쓰는 경우가 많아 6살 아이들이 공장에 취직해 하루에 16시간 동안 일을 했다고 한다. 이런 엄청난 빈부격차가 발생하고, 자유주의에 대한 하층민들의 불신이 싹트고 있을 때 반성한 자유주의로서 공리주의가 등장하게 된다. 공리주의를 한자로 功利라고 하는데, 이는 힘쓸 공(功)자에 이로울 리(利)자를 쓴 것이다. 공리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를 옹호하면서 거기에 수정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한자의 번역은 공리주의 유용성에 초점을 맞춘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공리주의를 公利로 번역 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다. 이것은 공리주의의 기본정신을 보여주는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빈부격차의 반성으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가치를 걸고 나온 공리주의의 기본 정신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리주의는 사상적적으로는 칸트의 의무론을 비판하고 목적론, 결과론을 내세운다. 이것은 곧 행위에는 그 동기와 목적이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즉, 무언가를 얻기 위해 행위를 하고, 좋은 결과를 얻는 행위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결과가 좋음이 옳음을 규정한다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공리주의는 경험을 중시하는 경험주의로서, 그리고 또 한 가지의 중요한 입장인 쾌락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 결국 쾌락주의가 후에 엄청난 비판을 몰고 오긴 하지만 어떠한 인간이든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자들은 인간의 보편성을 고려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공리주의는 삶의 목적을 쾌락과 행복의 추구로 여겼다. 이에 더하여 개인 혼자가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속의 모두가 행복하면 더 좋을 것이란 생각이 더해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3. 밀과 벤담의 공리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
공리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두 사람인 벤담과 밀은 공리주의의 창시자로서, 또한 계승자로서 공리주의의 타당성을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두 사람은 같은 공리주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함께 하기도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쾌락주의의 입장에서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했다.
물론 공통점은 경험론적인 성향에서 나오는 것이다. 경험론의 성향이라면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대적 진리관으로 볼 수 있으며, 좋음이 옳음을 규정한다는 입장을 말한다. 최선의 결과를 추구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둘의 사상은 공리주의로서 공통되는 것이다. 또한 산업혁명에 의한 큰 빈부격차로 인해 개개인의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것에 반대하여 사회적 이익인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내 건다는 점에서도 공통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역시 차이점이 존재한다. 벤담이 쾌락을 측정 가능한 양적인 면으로 생각한데 반하여 밀은 쾌락이란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질적인 면으로 생각했다. 즉, 쾌락에는 질적 차이가 존재하지 양적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벤담이 쾌락을 측정 가능한 것으로 보고 그 양을 측정하는데 관심을 가졌다면 밀은 쾌락의 질적 차이에 관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벤담의 경우에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쾌락과 심심해서 동생을 괴롭히며 얻는 쾌락이 같다고 주장한다. 양적으로 얼마만큼의 쾌락을 느꼈느냐가 중요하지, 두 쾌락 사이에서 어떠한 쾌락이 더욱 고귀한지는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밀은 두 쾌락 사이에는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입장을 지니고 있다. 밀의 했던 유명한 말 중에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났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쾌락의 질적인 차이를 잘 나타낸 말이다. 배를 채우는 포만감의 쾌락과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앎의 쾌락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질적인 차이를 내고 있으며, 서로 다른 쾌락의 추구로 인해 그에 따라 느끼는 행복감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