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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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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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Ⅰ. 서론
1. 작가소개
2. 시대적 배경-1991년 5월 항쟁
Ⅱ. 국가 권력 속에 사는 개인의 모습
1.시대와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이어짐
2. 할아버지
3. 아버지
4. 정민 삼촌
5. 이길용
6. 이상희
Ⅲ. 모두인 동시에 하나인 이야기
Ⅳ. 사랑과 폭력
1. 사랑
1) 악랄한 지도자의 사랑도 사랑일까?
2) 존재의 이유, 사랑
3) 사랑이라니, 상희야
2. 폭력
1) 폭력은 사회체제의 문제냐 개인의 문제냐?
2) 폭력,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억울한 사건.
3) 습관화 된 폭력에 길들여진 민중
Ⅴ. 결론
Ⅵ. 참고문헌
Ⅰ. 서론
1. 작가소개
1970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났고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나왔다. 93년 ‘작가세계’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다.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를 펴내며 소설가로 ‘전향’했다. 소설집 ‘스무살’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장편 ‘7번 국도’ ‘굳빠이, 이상’ ‘사랑이라니, 선영아’,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등을 냈다.
2. 시대적 배경 - 1991년 5월 투쟁
87년 6월 항쟁을 겪고, 노태우로부터 직선제 개헌이라는 항복을 받은 민중들은 승리의 환호성을 불렀다. 그러나 전두환의 우민화 정치 때문이었을까? 김영삼과 김대중의 분열 때문이었을까? 대통령 선거가 직선제로 실시되었고, 결과는 노태우의 당선이었다. 민중의 힘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겠다는 꿈이 또 한번 좌절 된 것이었다. 결국 이것은 1991년 5월 명지대학 신입생 강경대가 전경들의 쇠파이프에 맞아 죽는 사건으로 다시 불타오르게 된다. 당시 국가 권력은 시위를 진압하다가 발생한 우발적 실수에 의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처리하였다. 그러나 당시 운동권 학생들과 시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이 사건은 구조적으로 내정되어 있었던, 권력의 살인으로 생각했다. 당시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 - 강경대가 아니라 내 후배, 내 친구, 심지어는 내가- 이라면 누구든지 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민 운동이 일어난 지 10일 후 한진중공업 노조 박창수가 죽었다. 국가 권력은 박창수의 시신을 안치 시킨 영안실의 벽을 뚫고 들어와 시신을 빼앗아갔다.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결국 국가 권력에 의해 강제로 부검에 들어간 박창수의 사인은 자살이었다. 설사 그가 자살을 했다 하더라도, 영안실 벽을 뚫고 들어와서 시신을 가져간다는 일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운동권 학생들과 시민들은 분노했고, 국가 권력의 탄압에 대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 과정에 분신이라는 투쟁방법이 등장했다. 학생들은 죽음으로써 불의에 대항했고, 이러한 방법은 급속도로 퍼져 소위 ‘분신정국’이라는 말이 퍼질 정도로 확산되었다. 국민들과 국가는 당황했다. 하루에도 몇 명의 학생들과 시민이 몸에 불을 붙이고 죽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김지하 시인이 이것을 생명경시 사상이라고 비판했다. 국가 권력은 이를 놓치지 않고 김지하 시인의 말을 극찬했다. 그러면서 공안정국을 만들어 나가려하는 과정에 전 서강대 박홍 총장의 ‘배후세력’발언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학생들의 분신사건 배후를 조종하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발언이었다. 이것은 운동계의 반발을 샀으나, 공안정국을 만들어 나가던 국가에게 큰 힘을 불어 넣어주었다. 국민들은 헷갈리기 시작했다.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운동권학생들은 죽음을 부추기는 조직으로 의심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유서 대필 사건이 터졌다. 분신으로 죽은 김기설의 유서를 같은 운동권인 강기훈이 대신 쓰고, 그의 죽음을 선동했다는 것이다. 강기훈은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자진해서 검찰에 출두했다. 그러나 검찰에서의 진실은 없었다. 유서의 필적에 대해, 강기훈이 글씨라고 판단을 한 검찰은 그것을 부정하는 어떤 증거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강기훈은 구속되었다. 6월항쟁에 동참했던 시민들도 서서히 운동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방관 속에 투쟁은 운동권 학생들의 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러 던 중, 성균관대학교 김귀정양이 전경들의 토끼몰이식 진압으로 인해 질식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권력의 폭력이 다시 쟁점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더 이상 길거리로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힘을 잃은 운동권은 외국어 대학교에서 일어난 정원식 총리 계란 투척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힘을 잃었다. 5월 투쟁의 결과로 바뀐 총리가 왜 3000여명의 전교조 교사들을 몰아낸 정원식 총리인가에 대한 항변으로 외국어대학교에 강연을 온 정원식 총리에게 밀가루와 계란을 던진 것이다. 이러한 것은 당시 강연을 취재하러 온 기자와 매체들에 의해 적나라하게 보여졌고, 처참한 몰골의 정원식 총리의 모습은 운동권을 질타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유서대필 사건과 이 사건은 국민들의 반감으로 이어져 도덕성을 잃어버린 운동권이라는 이름으로 와해되고 만다.
나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던 그날부터 역사는 실시간 중계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그렇게 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눈을 떼지 못하고 시청할 수 밖에 없는 거잖아. 그게 자본주의의 미디어가 하는 일이야. 우리를 역사의 시청자로 만드는 것. (p.268)
Ⅱ. 국가 권력 속에 사는 개인의 모습
1.시대와 개인, 그리고 개인과 개인 간의 이어짐
시대
할아버지
이민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