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과학 해방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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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해방기시
해방기 해방기는 1945년 8월 15일 광복부터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전까지의 시기를 지칭한다.
는 일제식민지와 민족의 분단 사이에 위치한 사회적 변혁기로써 중요한 시기이다. 해방은 우리에게 잃어버린 말을 찾게 해 주었고, 민족정신을 일으켜 세웠으며, 우리 민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시작점이 되었다. 하지만 해방은 단순히 기쁨과 행복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해방이 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나라를 재건해야 한다는 중대한 문제에 부딪혔다. 나라의 재건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자립적으로 해결 할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은 미국과 소련의 개입으로 남북 분단이 이루어지고, 이러한 분단은 이데올로기적 분열을 야기한다. 이처럼 이러한 중요한 시기의 우리 민족은 다양한 과제를 안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먼저 주어진 과제는 일제식민시대의 때를 벗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일제의 흔적은 사회정치문화면에서 넓고도 깊게 남아있었다. 일제의 흔적을 없애고 새나라, 한민족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현실은 너무나 참혹했다. 일제가 남기고 간 물질적정신적 폐해는 우리가 스스로 일어서기가 힘들 정도로 큰 것이었다. 사회정치 문제를 떠나 문학계에서도 친일파를 시작으로 일제의 흔적을 없애나가야 하는데, 일본의 강력한 정책으로 인하여 친일을 하지 않은 문인이 거의 없을 정도였던 당시 문단에 확실한 해결책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친일을 하였던 기성문인들의 자리는 자연스럽게 작아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시기에 문단에서 활발히 이루어진 것은 ‘자기비판’ 이었다. 이는 정치권에서 민감하게 사용하던 용어인데, 문학계에서도 자기비판문제가 중요한 논점으로 떠올랐다. 권환은 자기비판의 필요성에 대하여 언급을 하였고, 한효는 자기비판이 자기무력과 자기죄과의 참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의 적극적 참여 자세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한효, 문학자의 자기비판, 『우리문학』, 1946, 2. 재인용.
임화 역시 자기비판에 대한 이야기에서 겉으로 드러난 친일 행위뿐만 아니라 내면의 양심까지 문제 삼자고 이야기를 하였다. 친일 행위의 다소 여부를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기 보다는 자기 가슴 깊숙이 내재해 있는 양심문제부터 솔직하게 터놓고 조선문학의 정신적 출발점을 삼자는 것이 임화 임화(林和), 본명 임인식, 호 성아, 우리오빠와 화로,네거리의 순이 등을 발표, 1932년 카프 개편 후 계급 문단 주도, 1945년 조선문학건설본보 결성, 조선문학가동맹창립 후 월북, 1953년 숙청. *참고문헌 : 김용직, 『임화문학연구』(세계사, 1990)
발언의 요지이다. 박용찬, 해방기 시에 나타난 자기비판과 진로 선택의 문제, 국어교육학회, 1995, 12.
이러한 자기비판의 정신이 해방기 작품 창작의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단순히 해방되었다는 사실, 억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사실에 대한 기쁜 함성의 발현 형태만으로 문학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받았던 핍박과 압제 속에서 우리가 겪었던 고통과 그 고통에 굴복하였던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가고자 하는 다짐을 하여 그러한 다짐이 문학에 투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즉 일제에 의하여 강요되었던 민족 문학의 왜곡을 바로잡고, 새로운 민족 문학을 건설하자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의 다짐이 투영된 작품은 독자로 하여금 많던 적던 친일을 했다는 부끄러움을 민족에 대한 애국심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자극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일제의 흔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우리가 가장 많이, 중요하게 사용한 말은 ‘민족’이었다. 해방이라는 말은 민족해방의 뜻을 내포하였고, 민족이라는 말의 사용은 국민들에게 자주성과 통일성을 안겨주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민족이라는 말은 좌익과 우익에 의하여 그 사용 양상이 달랐다. 이는 정치계 뿐 만이 아니라 문단에서도 같은 양상을 보였다. 문인들의 좌익과 우익계열을 권영민은 다음과 같이 나누고 있다.
좌익에는 조선문학가동맹의 시부위원회에 소속되었던 권환 김광균 김기림 김동석 김상원 김용호 노천명 임화 박석정 박아지 설정식 오장환 윤곤강 유진오 임학수 이흡 이용악 조남령 조벽암 조운 김상오 민병균 박세영 백인준 등이 있었고, 그 반대의 민족진영의 시인으로는 박종화 김억 양주동 김광섭 유치환 서정주 박두진 박목월 조지훈 이하윤 모윤숙 신석정 김상옥 박남수 이한직 등을 꼽을 수 있지만 수적인 열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영민, 해방공간의 시단의 형성과 쟁점, 『한국현대시사의 쟁점』, 시와 시학사, 1991.
민족이라는 말의 사용에 있어서 오문석, 강호정은 “좌익세력은 전략적으로 민족이라는 말을 민족 자체보다는 ‘반민족’, 그리고 ‘제국’과 같은 대립자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민족을 구성하고자 했다.” 라고 이야기하고, 또한 “우익 문인들은 ‘민족’ 자체의 속성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민족을 구성한다” 오문석, 강호정, 해방기 시문학과 민족 담론의 재배치, 한국시학회, 2009,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