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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전문학사] - 허균 - 홍길동전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허균과 홍길동전
목차
Ⅰ. 서론
Ⅱ. 과 허균
1. 허균의 생애와 활동
2. 허균의 창작설과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
Ⅲ. 의 의의
1. 홍길동전 감상
2. 홍길동전의 문학사적 의의
Ⅳ.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은 중등 국어교과서에 1차 개정부터 시작하여 현재 7차 개정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계속 실려 다루어질 만큼 고전 소설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권순긍,「자아실현을 위한 투쟁과 유토피아 - 교산 허균의《홍길동전洪吉童傳》」,『월간 (논)』통권 10호, 2007, p.37.
이 작품은 유교적 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박혀 있었던 조선시대에 ‘적서차별’이라는 민감한 부분을 문제화시키고, 이를 통해 독자들이 보다 비판적으로 사회의 모순을 인식하여 이전보다 확장된 문제의식을 갖도록 했다는 점에서 여느 고전소설들보다 한 단계 앞선 주제의식을 표출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 당시 조선 사회의 문제점이라 일컬어졌던 신분에 따른 차별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민중들이 이러한 현실을 자각하고 여기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도록 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이다. 또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을 통해 조선 사회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알 수 있고, 그 시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태도 등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연유들로 인해 은 그 소설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아직까지도 중요한 고전 작품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이렇듯 은 많은 학자들의 관심과 연구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현재에는 작품 자체뿐만 아니라 이것을 창작한 ‘허균’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허균이 정말 이 작품의 작자인지, 그렇다면 왜 이와 같은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그리고 과 허균의 삶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바탕으로 하여, 본고에서는 에 대해 논해 보기에 앞서 허균이라는 인물의 생애와 업적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다. 또한 허균과 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찰해 볼 것인데, 특히 허균이 을 지었다고 보는 입장과 그렇지 않다고 보는 입장을 살펴본 후 어느 쪽의 주장이 더 설득력 있는지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혀 나가보도록 하겠다. 그 다음으로는 허균과 의 관계에 대해 논의해 본 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에 대한 감상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으로 의 문학사적 의의에 대해 논의해 보도록 하겠다.
Ⅱ. 과 허균
허균의 생애와 활동
허균(1569~1618)의 본관은 양천(陽川)으로, 허엽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호는 교산(蛟山)을 사용했고, 자(字)는 단보(端甫)였다. 허균의 아버지인 허엽은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대사간(大司諫)과 경상감사 등을 지냈다. 김우철, 「[인물바로보기 2] 허균 -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다」, 『내일을 여는 역사』 제 5호, 2001, p.200.
허균의 동복형제로는 형 허봉과 누이 허초희가 있다. 특히 호를 난설헌(蘭雪軒)이라 했던 허초희는 조선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일컬어지는 인물로서, 허균과 함께 한국 문학 역사의 주요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처럼 남 부러울 것 없는 당대 최고의 명문집안에서 자라난 허균은 어린 나이부터 총명한 자질을 드러내게 된다. 허균은 아홉 살에 시를 지었는데, 그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사람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다고 한다. 막내아들로 태어난 허균은 성장기에 몇 차례 가족과의 사별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열두 살에 부친이 별세하면서, 허균은 자신의 정신적 지주를 잃게 되었다. 훗날 스스로도 고백한 바 있듯이, 아버지를 일찍 여읜 어린 동생을 가여워한 형들의 묵인 속에 허균은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김우철,「[인물바로보기 2] 허균 -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떠나다」,『내일을 여는 역사』 제 5호, 2001, p.201.
스무 살이 되던 해에는 자신을 가장 아꼈고,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던 둘째 이복 형 허봉이 세상을 떠나게 되고, 스물두 살 때에는 허난설헌과, 그리고 스물네 살 때에는 부인과 각각 사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