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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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을 읽고
어려서부터 심각하게 종교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았다. 집안 자체가 특정한 종교에 독실한 집안인데다가 집에서 나에게 신앙심에 강요가 많았다. 그럴수록 주체적인 나로 크는데 방해가 되는 것 같아 기분나빠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종교를 안 믿는 이유가 여기 있다. 종교 때문에 하기 싫은 행사도 많이 참여해야 됐고 알게 모르게 내가 속했던 단체와 종교가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알고 싶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곳에 나도 모르게 속해 있다는 걸 알면 우선 집안에 대한 불만도 쌓여가고 종교는 나에게 회의감을 불러냈다. ‘고귀하신 신께서 평화를 위해 이 땅에 내려왔다는데 종교는 우리집안에 갈등만 일으킨다. 석가모니가 태어난 인도나 예수가 태어난 이스라엘이 전 세계에서 분쟁이 많이 일어나는 지역이거나 살기 안 좋은 곳에 속해있지 않는가. 또 역사를 보면 최소한 전지전능하신 신께서는 종교 때문에 일어난 수많은 역사적 전쟁들로 생겨난 희생자들이 생겨나기 까지 방관했다. 종교는 모순덩어리이고 비논리적이고 사람들의 이성을 꼼짝 못하게 한다.’ 이런 식으로 종교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심했고 나중에는 신도들 앞에서 티는 안냈지만 특정한 종교의 신도라 하면 속으로 혐오까지 느꼈다. 특정 종교에 신도라 하면 옆에 가기 꺼려지고 나한테 호의를 베풀어도 그 사람의 의도까지도 의심해봤다. 조금 과격한 표현일 수 있는데 종교에 대한 내가 가진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읽으면서 앞 부분은 책을 읽는게 힘들었다. 생각할 여지를 주는 것보다 정보 위주이기에 외워야 될 것 같은 강박관념때문인지 책장을 넘기기 힘들어서 이다. 그러다가 『제 3장 창가학회』에 창가학회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이 나오자 책이 재밌어 지기 시작했다. 책에 나와 있듯이 남묘호렌게쿄가 종교의 창인 것을 알자 내가 이미 알고 있었던 종교이었던 것이다. 창가학회는 불교에서 파생된 종파로 한국에서 나무아미타불처럼 남묘호렌게쿄... 창을 외우는 걸 상상하니까 의외로 익숙한 종교였다. 남묘호렌게쿄를 들어본 계기는 일본에 처음으로 진출한 개그맨인 조혜련 때문이다. 조혜련은 일본에 진출하면서 남묘호렌게쿄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인터뷰까지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었던 일화가 있는데 그때 나 역시도 창가학회의 무지했던 터라 불온한 종교 신도라며 일본에서 힘든 연예계 생활을 했던 조혜련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졌다. 이런 조혜련이 창가학회의 회원이 되면서 일본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한국 네티즌으로부터 비난을 받는게 꼭 재일한국인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보였던 행동양상과 주변 환경, 그들을 바라보는 내키지 않는 시선들이 닮았다고 생각해서 재일한국인의 삶을 비춰볼 수 있어서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점이 생겼다. 왜 하필 신흥 종교인가? 전쟁이 끝난 후 정신적인 안정을 위해 기댈 곳이 필요하거나 아님 외로운 생활에서 사회적 위치를 찾는데 종교를 선택해서 적응해 나갔다는 것에 쉽게 이해가 간다. 하지만 기존의 대형 종교를 선택하면 일본에 적응해나가도록 해주는 강력한 울타리가 생길텐테 일본에서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종교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종교에 대한 믿음보다 유대관계 형성에 도움을 주기에 창가학회의 회원이 되었다는데 이는 굳이 창가학회를 선택하는 강력한 이유가 되지는 않아 보인다. 또 재일한국인의 적극적인 포교활동과 절복이 이해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있어서 인간이 소외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깔리는 심리적 바탕을 이해해야지만이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끈끈한 조직력이 강력한 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도 높다. 신흥 종교 회원으로써 저주와 비난을 받는데 견디기에는 단단한 결속력이 필요하다. 같이 일본사회에서 받는 이질감으로부터 창가학회 회원들 사이에 공감이라는 동질감을 느꼈을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요새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떤 사물이나 사람을 주무를 수 있는 권력에 대한 고찰을 보여주는 컨텐츠가 많이 보이고 있다. 역사에서 간혹 종교 역시도 종교 지도자가 사람위에 군림하고 부패한 권력 집단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나는 종교적 차원이 정치적에서 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것에 매우 반대하는 입장이다. 상식적인 선에서 간단하게 생각해보자면 권력을 얻은 집단의 종교가 자신의 신념과 반대하게 되면 곧 분열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물론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자신의 표를 행사하면 되겠지만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당에다가 가치관에 있어서 예민한 종교적인 차원에서까지 불만이 시작 되면 사회통합이 어렵다는 것이 불보듯 뻔하다. 책에서는 권력으로 교리를 강요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라고 말하지만 종교는 깨끗함과 순수를 중요한 가치로 인정이 되지만 정치가 순수하면 큰일이다. 정치에서 순수하게 같은 곳만 바라보고 한 목소리를 내면 전체주의아닌가 생각이 들고 이익집단이 모여 서로 갈등하고 이익을 추구해야지만이 좋은 가치이다. 이런 순수와 이념의 대립과 같이 추구하는 원리가 상반대인 종교와 정치가 만났을 때 과연 좋은 결과가 있을지 미지수이다. 실제로 부패했으면 했지 좋은 실례가 있었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종교 그리고 정치가 사회 발전이라는 목표가 같더라도 원리가 다르기에 종교의 정치적 활동을 반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