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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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1, 2
아시아 기독교
기독교가 “개발도상국으로 이동” 이라는 표현은 기독교가 서양의 종교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안 길만과 한스-조애킴 클림키트는 “그런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 안에는 정치적, 도덕적, 영적인 것들 안에 스며든 우월감이 남아있다.” 라고 지적한다. 서구 문명에서 아시아로 기독교가 전파 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현재 모든 사람이 공감하고 있고 이것은 곧 잘못된 생각이다. 영화나 성화를 보더라도 예수와 또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은 피부가 하얗고 코가 오똑하며, 눈이 짙다. 흑인 예수, 마리아, 그리고 황인종 인물이 성화나 영화로 표현된 일은 본적도 들은 적도 없을 것이다. 나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을 이번 수업과 그리고 책을 읽고 독서보고서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기도교의 기원이 아시아적인 것을 확인하는 것은 아시아 교회사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대단히 중요하다. “아시아 기독교”라는 용어는 설명이 약간 필요하다. 이것은 지리적 의미보다는 문화적인 의미로 더 많이 사용된다. 예루살렘, 베들레헴, 안디옥 그리고 아르메니아는 모두 지리적으로 아시아에 있으나 무슬림이 로마를 정복할 때까지 정치적인 면과 심지어 문화적인 면에서 서양에 속했다. 그러므로 아시아 기독교는 “로마제국 밖에서 유프라테스강 동쪽의 고대 동양왕국들 안에 자라고 퍼져나갔고, 오스르호네프로부터 구 비단길을 따라 페르시아를 통과해서 중국까지 뻗어 나갔거나 아니면 수로를 통해 홍해로부터 아라비아를 지나 인독가지 이르렀던 교회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네스토리안 교회는 대부분 초기 아시아 그리도인 공동체들을 호칭한다. 바울과 다른 선교사들이 서양에서 그리스인, 로마인, 야만인을 개종시키고 있을 당시 동양에서는 에뎃사를 근거지로 페르시아, 아라비아, 중앙아시아, 중국과 인도를 향한 선교가 진행되었다. 동쪽을 향한 선교는 성 도마를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아시아의 기독교 역사를 로마 카톨릭의 경우 단지 16세기에, 개신교의 경우 19세기에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지난 4세기 동안, 선교사들이 아시아에 복음을 전하기 이전에는 아시아에 복음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이다. 훨씬 더 일찍이 아시아에 교회가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1500년 기간의 아시아 기독교에 의해 이루어진 문화적 사회적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아시아에서의 기독교의 쇠퇴
아시아에서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주후 1500년경에 끝이 났다. 파니커는 기독교가 쇠퇴하게 되는 원인들을 유럽의 항해와 육로를 통한 서양문화의 팽창으로 본다. 아시아 사람들과 문화에 대한 서양적 접근을 세 가지의 중요한 논점들, 즉 식민주의적 제국주의, 인종주의, 그리고 기독교 선교정책에 입각해서 비판한다. 비가톨릭 유럽국가들이 아시아의 식민지 세력으로 성장하지만 유럽의 개신교 통치자들은 아시아인들의 개종에는 관심이 없었다. 선교사들은 제국주의적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동인도회사를 예로 들 수 있다.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적 목적이 아니라 순수 선교를 목적으로 한다 하여도, 타지에서의 생활, 의식주 해결문제, 그리고 치안상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국가에 의지 할 수 밖에 없으며 선교하는 곳의 상황과 문화도 고려하는 복잡한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아시아를 향한 서구의 의식은 식민지와 그곳의 자원의 활용이었다. 이러한 그들의 의식 속에서 아시아를 향한 선교는 토착민에게 반발을 일으킬뿐더러 복음이 전파되었을리 만무하다.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
아시아 에큐메니칼 운동사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진 때에 기록된다. 많은 사람들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말하며 자극도 감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양하고 복잡한 도전들의 배경에 대처해서 에큐메니칼 사업을 재고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감지 되고 있으며 “새로운 에큐메니즘”에 대한 요청들이 있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진공 속에서 단순히 자신의 내적 역동성에 의해 발전된 것이 아니다.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이 이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갱신을 위해 노력하는 얻더한 시도라도 오늘날 세계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깊은 변화를 고려해야만 한다.
에큐메니칼을 이해하기에 앞서 인식을 바꿔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삶의 ‘온전함을’을 끌어안는 의도, 실제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교회의 전 과제에 관련된 모든 것’ 이것들은 가치있는 기획들이 될 수는 있어도, 그들의 목적과 결과에서 ‘에큐메니칼적’이 될 수 없다. 에큐메니칼은 새로운 의미를 가진 살아 있는 용어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의 하나됨을 인식하고 공동연구하며 협력하는 것이다. 인종과 문화, 종교를 떠나 모두가 함께 일하고, 예배드리면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형상을 함께 배워가는 것이다. YMCA의 개척자인 앙리 두낭은 “서로다른 교파의 그리스도인들은 인내와 자비, 그들의 개인적 관점과 그들의 특수한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자신들의 개인적 자유를 지키고, 필요하다면 그들의 권리를 방어하는 한편, 사랑으로 일치할 수 있고 일치해야 하며, 서로서로 사귈 수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선에서 함께 일할 수 있고 일해야 한다.” 고 말한다.
에큐메니칼 단체들의 초기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에큐메니칼 운동은 우선적으로 교회일치를 향한 운동이다. 우리시대에, 교회의 전체성과 보편성에 도달하기 위한 시도를 설명하기 위한 용어가 필요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또 하나의 고대 기독교적 단어로 관심을 돌렸고,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해 말했다. 이제 이 단어는 20세기 초부터 점차적으로 분명한 형태를 갖추어온 기독교 협력과 일치를 향한 전체운동에 대한 호칭으로 확고하게 정착되었다.
20세기의 선교활동은 그 자체의 도구들과 조직들을 창출해 내었다. 선교운동의 대부분은 교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인 집단들, 혹은 일부 그리스도인 개인들에 의해 시작된 자발적인 운동 또는 조직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의 제도로부터 독립적이었다. 일부 선교단체들로 하여금 제도교회들과 관련 없는 입장과 정책들을 채택하도록 몰고 간 선교정신을 발전시킨 것은 교회들이 원치 않았던 것이었고 실패이기도 했다. 복음전파 행동들 안에, 시대정신으로 인해 개인주의적 경향성이 강화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은 어떤 점에서 복음주의 운동과 그 결과로 생긴 선교 운동의 부산물이었다. 선교운동들은, 비록 본의는 아니었지만, 근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선구자가 되었다.
기독교와 다른 종교적 전승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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