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의 고백록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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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어거스틴의 고백록 서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어거스틴의 고백록 서평」
Ⅰ.들어가는 말
사람은 깊은 심해를 다 알 수 없고 광활한 우주가 얼마나 크고 넓은지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과학문명이 들어와 이를 해결해보려 했지만 더 가까워진 것은 우리의 한계를 알게 된 것이며 올바른 이해가 없으면 도리어 인간과 세계가 피폐할 수밖에 없음을 과학의 악영향이 말해주었습니다. 사람을 생각해 보아도 우리는 우리의 내면의 세계의 신비로움을 다 말할 수 없으며 많은 사조와 철학으로 고민하여 보아도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몇몇 사람들이 이러한 의문에 이끌려서 그들 나름대로의 사상을 만들어내고 그것들로 이 세상과 사람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이들의 사상은 인류의 이성을 깨우치기도 하고 세계의 가치를 움직이기도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단지 그들이 가두는 세계, 인간에 대한 설명으로밖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한 한계가 있으며 모든 것을 제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와 인간, 더 나아가 시간과 모든 보이지 않는 인간의 내면과 영적인 것까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지으신 창조주가 계시며 그가 직접 우리에게 계시하시고 기록해두시기까지(성경) 하사 이를 믿게 하신다는 사실은 이를 깨닫는 자들에게 두렵고 겸손한 마음을 갖도록 합니다. 만약 이를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그들의 뜻대로 고집하여 살아가는 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그들을 비웃으십니다.(시2:4) 시편24:1은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라고 선언합니다. 정답을 알고 사실을 아는 기쁨은 정답을 모르는 자들에 반해 이에 대한 만족과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라 고백하며 그의 성령을 통해 새롭게 되어 그분의 교회에 속한 믿는 자들인 우리는 삼위하나님을 창조주로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위와 같이 본 서평을 열게 되는 것은 저자와 그의 글들을 통해 제가 얻게 된 기쁨을 표현하면서 시작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 신앙의 깊은 사상적 어른인 본 고백록의 저자인 어거스틴의 글을 이번에 처음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로 그의 인생이 세상이 알지 못하는 영생을 얻음으로 그의 삶과 모든 인격과 사상이 새로워졌고 그가 끊임없는 진리를 향한 고뇌와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경주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와 도움을 줍니다. 저는 서평을 통해 그의 회심까지의 한 사람의 생애와 그러한 과정 가운데서 그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어떻게 정립되어가며 또 어떤 말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 하면서 이에 대한 평가해보려고 한다.
Ⅱ. 고백록의 중심 내용
고백록의 시작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찬양으로 시작하는 것은 앞으로 전개되는 내용을 포괄하기에 충분합니다. 특히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서(ad te)살도록 창조하셨으므로 우리 마음이 당신 안에서(in te)안식할 때까지는 편안하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은 고백록의 전 사상을 나타냅니다. 어거스틴 저 「성 어거스틴의 고백록」 선한용 역(대한기독교서회, 2010, 45)
(「성어거스틴의 고백록」, 45) 이는 고백록의 9권 이하의 내용이 그의 회심의 내용을 담고 있기에 피조물이며 죄인인 인간이 그들의 창조자이시며 무한하시고 인격적이신 유일한 구원자에게 돌아가는 회심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0권부터 13권까지는 그의 철학적인 탐구와 진리를 향한 고뇌를 보여주면서 창세기1장에서 2장3절까지의 말씀을 은유적 해석을 통해 창조기사에만 그치지 않는 진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특별히 9장 이하에서는 그의 인간적·신앙적 고뇌 가운데서 그의 죄론과 인간론 등이 기묘하게 잘 나타납니다. 더불어 하나님께 대한 찬양과 기도가 교차됨을 통해 이러한 고뇌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갈 것임을 예비하고 있습니다. 먼저 그가 17세에 카르타고로 유학을 가기 전의 고백을 살펴보면 스스로는 전혀 기억할 수 없다고 고백하나 다른 아이들을 통해 살펴본 결과 유아기 때는 인간이 태어나고 성장할 때부터 원죄와 자범죄로 인해 죄악되며, 또한 배움에 있어서 기초학문을 배우나 그것이 고통스러웠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의 갓난아기 때부터 유아기 때의 죄악상을 드러내는데 그 모습은 헛된 욕망의 연속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공부에 대해서도 언급하면서 체벌이 중심이 된 타인에 의한 학습과 관찰을 통한 자연스러운 습득 모두가 학습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는 교육에 대한 관점도 이야기합니다. 그러면서 집중된 것은 죄에 대한 자화상으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진리를 찾으려 하는 것들이 있었음을 말합니다.
이후 그는 고백은 청년기를 거치며 죄가 더욱 강한 힘으로 나타난다고 고백합니다. 배 도둑질 사건을 통해 죄의 집단성과 악한 의지, 곧 왜곡된 의지가 나타나 사악할 수 밖에 없는 죄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의 사악한 의지가 목표로 하는 것은 죄 그 자체이며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는 왜곡됨을 밝히 말하면서 그가 회심 전까지 얼마나 죄가 자신을 지배하는 것으로 존재하는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결국 그의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와 권유에도 불구하고 극악한 유물론과 진리 왜곡에 빠진 마니교에 몸을 담게 됩니다. 특히 고백록 전체에서 죄의 3요소로 다루고 있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우리에게도 근접한 위치에서 유혹하는 것들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깨우쳐주지 않으시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들입니다. 그런 가운데 그는 철학에 접근하게 되고 영적 존재를 절대적으로 부인하고 오직 육체 자체(오감)를 좋다고 하는 마니교 사상에 깊이 빠집니다. 특별히 3권 12장에서는 어거스틴의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어느 감독의 충고가 나오는데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인도가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감격적인 표현이 실려 있습니다.
고백록의 전반부는 계속 해서 그가 참된 행복과 그의 영혼이 쉬지 못하고 죄악의 반복됨이 안식을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된 회의가 있었음을 알게 합니다. 그는 그의 친구의 죽음을 통해 큰 고통을 얻게 되고 인간의 비참하고 안식 없는 내적 갈등에 대해 생각하며 그 어느 것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결론과 함께 보이는 아름다움에 집착되는 자신에 대해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철학적인 사조가 있으나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의 피조물 사랑과 행위에 대해 깊이 회개하는 고백이 들어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백록에 있어서 행복(안식)이라는 명제는 그에게 중요한 사상적 배경을 줍니다. 그가 파우스투스에 대해 부분적으로 배우나 마니교를 조금씩 떠나며 기독교 설교자인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는 장면은 그의 어머니의 기도의 응답의 시작이며 동시에 그가 고백하며 끊임없이 자비와 은혜를 구하는 창조주께로 돌아오는 지점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참으로 겸손하게 고백록 전체에 교차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생의 자랑에 이끌리어 로마로 가게 됩니다. 그러면서 회의론자들과 교제를 하게 되면서 마니교의 사상에 대해 의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성자에 대한 교리와 영적존재에 대한 교리 등은 유물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