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문 양반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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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감상문 양반을 읽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양반을 읽고
양반이란 단어는 정확한 뜻은 알지 못했어도 우리주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양반은 인칭대명사로서 예의 바른 사람, 부인이 제 3자에 대하여 가리켜 하는 말 등, 여러 가지 뜻이 있다. 그 중에서도 역사적 의미로서는 문반과 무반을 합쳐 말하는 뜻이 가장 적절한 의미일 것이다.
이 책 에서는 양반을 두부류로 나누어 재경양반과 재지양반으로 크게 나누었는데 그 중에서 재경양반은 서울에 거주하는 고위관직의 일을 담당하였던 양반이고, 재지양반은 지방에 거주하면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였던 양반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과거에 합격하거나 당대를 대표하는 저명한 학자를 조상으로 모시고, 동족집단을 형성하면서 양반의 생활양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 은 일본인 저자가 일본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다는 것이 상당히 나에게 이색적인 느낌을 주었다. 양반, 그것은 전형적인 한국의 분위기이자 성격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혀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썼다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도, 상당히 큰 의미라 할 수 있다. 또한 보통 일본의 지식인들은 한국에 대해 식민주의적 사관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는 것 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비교적 객관적 입장에서 책의 내용을 이야기 했다.
양반은 조선시대의 주요권력계층이었던 양반은 병역 및 부역 면제 세제해택, 형벌에 대한 특혜등 많은 특권을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지위 및 체면에만 신경쓸 뿐 민생은 돌보지도 아니하고 한낱 명분에 지나지 않는 길고도 지루한 그 수많은 당파싸움들을 하기만 하였다. 양반사이에서도 세도를 누리려는 많은 사투가 있었고 세도가의 자제는 실력으로 급제승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배경과 세도로 승진했기 때문에 무능이 앞섰다. 물론 조선에도 합리적인 사고를 가진 성호 이익과 율곡 이이같은 일부 선각자가 존재하였었다. 이들은 노비세습문제에 관하여 양인이 사회의 많은 인구비율을 가져야 하지만 잘못된 노비세습제도로 인해 사회내 양인의 비율이 낮아지기 때문에 대국적 정치적 안목으로 노비세습완화 주장을 펼쳤지만 이 또한 당쟁의 여파로 적대시되어온 이이의 주장을 무조건적인 동강 김우옹의 반대가 이루어졌다. 소수의 선각자만으로는 삐뚤어진 체제를 바로 세우기에는 너무 힘들어 보였다.
하위계층이었던 상민과 노비, 백정에 대하여는 양반들의 사리사욕에 고통만 받는 참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그러나 신분제도의 병폐로 그 하위계층마저도 서로의 신분을 나타내며 그로 인한 갈등을 겪는 것을 보면 정말 가슴 아픈 일이다. 양반들이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상민 및 노비 백정은 한 번 정해진 자신의 신분을 벗어나는 것은 거의 힘든 일이었다. 이들은 양반들이 자신의 신분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발상에서 계층에 맞게 달리 만들어진 호패를 차고 다니며 신분과의 지겹도록 끈질긴 운명을 지녔다. 비록 임진왜란 후 광해 군때 이 신분표시제도가 문란해지긴 했지만 그전까지는 대명률에 의해 엄격히 다스려졌다. 상민들은 갖은 세금 및 수포법과 같은 군포로 인하여 극심한 착취를 당하였다. 수포법은 처음에는 군적에 오른 자 중 현역에 종사하지 않은자에 대하여 병역을 면제해주는 대신 삼베나 무명을 매겨 거기서 나오는 재원으로 용병을 만들 취지로 생겨났으나 이 또한 군관들의 자의로 병졸을 돌려보내고 몸값을 착복하거나 군보포와 같은 해괴한 명목으로 세금을 징수하는등 갖은 착취를 당하였다. 이러한 착취로 심지어는 처자식을 매매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노비와 백정들은 조세에 대한 의무는 없지만 양반들의 목적에 의해 이용도 당하였다. 개화기 무렵 이들 하위계층들의 의식이 깨어나고 경제적 우열에 따라 봉건적인 신분관념은 붕괴되었고 양반과 상민 상민과 천민의 한계가 점차 모호해져갔다.
이 을 보고 양반계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사회 주 권력계층으로 조선사회체제의 버팀목 및 기반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권에만 몰두한 발전적이지 못한 당파싸움과 시대변화에 적응치 못한 나머지 나라마저 잃는 형국이 되었다. 영조의 탕평책과 같이 조선의 왕들중 이러한 당파싸움을 종식시키고자 노력하였지만 양반의 자존심 및 세력다툼은 끝날줄 모르고 자신의 정치생명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사회가 발전하려면 자신이 노력한만큼 보다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데 양반이 조성한 극심했던 신분제도와 계급의식으로 인하여 아무리 공부를 해도 양반 가문이 아니면 고작 진사 벼슬밖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신분의 귀천에 따라 집의 크기, 가산의 한계 심지어 가구 식기 의류 신발에 이르기까지 제한을 받았다. 따라서, 일을 부지런히 하여 돈을 벌어 가산을 늘리는 건 접어두더라도 입고 싶은 옷 한 번 제대로 입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벌 필요가 없었다. 장사에 있어서도 장사를 크게하면 할수록 그에 비례해서 공상미니 관미니 하여 세금이 늘어나므로 애써 장사를 해보아야 관청이 번돈은 모조리 관청에서 가져가 버리기 때문에 그저 앉아 놀기만도 못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양반의 문제점에 대하여는 중고등학교의 국사교과서를 통해 접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뿌리가 깊은지는 정말 몰랐다. 그들의 생각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도 자신의 지위가 떨어질까봐 걱정하는 양반을 생각하면서 정말 가슴이 아펐다.
이 일본인이 쓴 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내가 너무 비판적인 생각에 빠져있다는 생각을 했다. 양반. 그들은 사회적 특권 계층으로서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한국의 문화 코드였던 것이다. 양반은 일정한 객관적 조건들을 바탕으로 지방에서의 확실한 자리매김으로 사회적 지배체제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특히, 주자학의 전국적 유포라는 점에서 양반들의 역할을 상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양반들의 경제생활, 일상생활, 학문활동, 혼인관계, 문중형성, 그리고 시대적 흐름에 따른 계층의 변화, 이런 일련의 과정들을 살펴보면서 재미있었던 것은 양반들의 문화가 점차적으로 사회전반에 퍼져 갔다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