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개론]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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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창가학회와 재일한국인
이번 책을 읽으면서 평소 종교와는 거리가 먼 나에게 창가학회라는 것은 생소한 단어였다. 처음에는 학회라는 명칭 때문에 학술 단체라고 생각이 들었었으나 책을 읽다보니 창가학회라는 종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일본계 종교라는 사실이 과연 재일한국인과 얼마나의 연관성을 줄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일본을 왜구라고 생각해서 가까이 두지 않았었고, 이후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반일감정은 매우 커졌다. 그것은 독립을 하고나서도 현재까지도 많은 국민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성향이 짙은 한국인 피를 가진 재일한국인들이 일본계 종교를 많이 믿고 있다는 사실은 교수님이 여는 글에 언급했듯이 나 또한 궁금해졌다. 어떠한 연유로 재일한국인들이 반일의식이 강한 한국에 일본의 종교를 전파한 것일까? 그리고 왜 그렇게 많은 재인한국인 신도들이 일본 내에서도 적대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창가학회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일본의 식민지 지배 등으로 인해 형성된 재일한국인 집단이 어째서 일본의 신종교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재일한국인은 일본 사회에서 어떤 존재이며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한다.
이 해답들을 얻기 위해 내가 우선 알아야 할 것은 창가학회라는 종교이다. ‘창가’란 ‘가치 창조’라는 뜻을 담고 있으며, 창가교육은 삶 속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주체적인 인간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했다. 처음은 이처럼 창가교육학회로 시작했으나 후에 ‘창가학회’로 바꾸고 종교 단체로 재출발하였다. 창가학회는 국가 종교가 무너지고 전통 종교가 더 이상 대중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종교 운동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두고 싶다. 역사공부를 해보면 알겠지만 상식적으로 종교는 나라를 통합시켜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니 그만큼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교가 무너졌는데, 이를 사회 전체를 구원하는 생명의 원리로 생명론을 승화, 확대시켜 새로운 종교로 발전시킨 것은 매우 의미가 있는 일이다. 그리고 점점 창가학회는 포교활동을 통해서 엄청난 규모의 종교 단체로 성장했다. 이렇게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이유는 일본 불교의 개혁적인 성향을 부활시켜 강력히 포교를 추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일본계 종교를 받아들인 재일한국인들의 적극적인 포교 활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 교단 본부는 이러한 재일한국인들의 노력을 알고 필요한 지원을 했을 뿐이다.
그렇다면 재일한국인들은 무슨 상황 때문에 창가학회의 입신하였을까? 내가 생각하는 종교란 사람들이 무언가 기대고 싶고 의지하고 싶을 때 더욱 그 신앙심이 커진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분명 그들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것이라고 추측을 해볼 수 있었다. 이 책에 따르면 우선 재일한국인 2, 3세는 대부분 부모로부터 창가학회 신앙을 물려받았다. 재일한국인 1세들이 창가학회에 입회했던 시기는 창가학회가 급성장하던 1950~1960년대로, 당시 재일한국인들은 변변한 직업이 없었고 가난했다. 그때 그들은 종교적 구원에 손을 내밀었다. 창가학회는 나중에 혹은 먼 미래나 사후의 행복보다는 지금 이곳에서의 현세이익에 대해서 가르쳤다. 즉 신앙을 실천하면 곧 그 증거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창가학회에 입회하는 즉시 모든 것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살고 싶어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입신했다. 그들에게는 마지막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말 생활고나 나아져 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창제에 매달리게 된 것이다. 가난, 병 말고도 그들을 괴롭혔던 것은 ‘조센징’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였을 때의 차별이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차별은 결국 경제적 궁핍으로 이어졌고, 이는 재일한국인들을 다시 사회의 끝으로 몰아버린 행위였다. 예전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글을 본적이 있다. 재일한국인인 아이가 여전히 일본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며 조센징이라고 불린다는 것이다. 평소 일본의 이지메문화가 만연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재일한국인들이 타겟이 된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이와 같은 사회적 차별은 그들이 신앙생활을 시작한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그들은 가난과 질병에서 벗어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싶은 욕구가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몇몇의 재일한국인들은 한국인으로서 일본인의 종교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거부감을 나타낸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가 대부분 남성인데 이러한 모습은 꼭 창가학회만의 일은 아닌 것 같다. 내 주위를 둘러봐도 대부분 종교에 대한 신앙심은 여성들에게서 크게 나타나는 것 같다.
그리고 재일한국인들이 창가학회에 입신하게 된 방법으로는 그들만의 절복 방식에 있다. 바로 옆에 사는 이웃들에게 믿음을 권유하는 방식으로 특히 가난, 병, 경제적 문제 등과 같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권유한다. 나라도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그게 누구라도 손을 뻗어 잡으려고 할 것이다.
재일한국인들이 일본에서 정착할 때 인적 연결망이 크게 작용한다. 어쨌든 낯선 땅에서 그들은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들은 한국 문화 속에서 생활했었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그들은 뭉치려고 했다. 그들을 묶어줄 총련과 민단과 같은 조직이 있었지만 그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활동은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차별적인 구조의 일본 사회에서 힘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창가학회 역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고 있어 재인한국인들은 민족, 종교적 차별이라는 이중 차별에 놓여있었다. 그러나 그 종교 속에서는 그들은 민족적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던 것이다. 이렇듯 내가 처음 예상했던 대로 재일한국인들에게 힘든 상황이 닥쳤었고 그로 인해서 그들이 창가학회를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다른 종교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창가학회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그만큼 재일한국인들이 겪었을 아픔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국인들이 다른 나라에 귀화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지 않지만 일본으로 귀화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결국 재일한국인들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그들을 보호해줄 울타리를 얻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창가학회라는 종교를 만났고, 이를 통해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는 종교와 인간 삶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이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나를 이해시켰다. 나도 한국인으로서 내가 비록 겪지는 않았지만 내 조국이 겪었을 그 아픔 때문에 반일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왜 재일한국인이 일본 종교인 창가학회를 선택했어야만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었으나 창가학회도 종교일 뿐이다. 모든 종교는 ‘차별은 없다’고 말한다. 이처럼 재일한국인들에게도 창가학회는 일본의 종교가 아닌,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종교일 뿐인 것이다. 단지 창가학회는 재일한국인들에게 희망이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간혹 간사해보였다. 그들이 큰 일을 해냈을 때 역시 한국인이라며 칭찬하지만 평소에는 그들은 배제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민족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을 보호해준 창가학회를 일본의 종교라는 무조건적인 부정적 시각보다는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