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출판, 찬송가 사업과 에큐메니즘 - 성서와 찬송가의 연합사업에서 나타난 갈등과 분열 - 에큐메닉스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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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성서출판, 찬송가 사업과 에큐메니즘
성서와 찬송가의 연합사업에서 나타난 갈등과 분열
에큐메닉스 세미나
1. 들어가며- 성경번역과 찬송가 편찬을 통한 에케메니칼 운동
에큐메니칼이라는 용어를 교파의 초월과 차이 수용이라고 정의했을 때 성경번역 사업과 찬송가 편찬 사업은 모두 에큐메니칼적인 사업이었으며, 그 당시 선교현장에서 교파주의가 주류였던 상황을 극복하여 연합하는 하나의 동력이라 할 수 있겟다. 초기 한국선교사들은 이 사업을 통해서 교파의 초월과 연합을 실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어로 성경과 찬송가를 발행함으로 한국인들을 통한 한국교회에 대한 실현이 있었을 것이라 보여진다. 따라서 성경번역과 찬송가 편찬 사업은 성공적으로 추진이 되어야 했으며, 단일 교파를 통해서 추진되고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파의 연합과 협력이 필요한 에큐메니칼적 정신을 가진 사업이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두 가지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초월과 차이 수용 그리고 연합과 협력은 말처럼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경사업은 번역하는 가운데 쓰이는 언어적인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있었고, 주권적인 갈
등으로 인해 결국 1913년 2월 한국에서는 영국성서공회(BFBS) British And Foreign Society-BFBS으로 약칭함
가 실행권리를 갖고, 필리핀에서는 미국성서공회(ABS) American Bible Society -ABS으로 약칭함
가 실행권리를 갖게 되면서 서로 단독적으로 사업이 진행되었으며, 한국에서는 BFBS로 단독사업이 넘어가게 되었다.
찬송가 편찬사업도 선택할 찬송가사와 교파간의 타협하지 못한 갈등 그리고 에큐메니칼적 활동인 찬송가 편찬사업에 대한 거부감으로 하나로 통합된 “통일찬송가”는 발행되었으나, 각 교파마다 찬송가를 발행함으로 완전한 연합과 에큐메니칼은 이룰 수 없었다. 여기서는 성경사업과 찬송가 편찬사업에서 나타난 교파 간의 갈등과 극복하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면서 각 사업이 어떤 에큐메니칼적 성격을 뛰고 있으며, 결론에서는 두 사업의 한계에 대해서 논하고자 한다.
2. 에큐메니칼의 출발과 발전- 성경번역과 찬송가 편찬까지의 과정
1896년에 출발한 성경번역 사업과 1892년에 출발한 찬송가 편찬사업은 서로 출발한 시기에는 차이는 있지만 서로 교파의 연합이 시급하던 상황 속에 있었다. 그 당시 한국은 일제의 강점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을 때였다. 러일전쟁과 을사조약, 그리고 정미7조약 등 일제는 한국을 통치하려는 계획을 차차 추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불안전한 국가적 위기 안에서 선교사들은 지금까지 교파들이 독립적으로 하고 온 사업을 연합하고 협력할 것을 의견이 고조되어 있었다. 실재로 이런 연합과 협력에 대한 추구는 1905년에 재한복음주의 선교사공의회 대표 150명이 모여 한국단일교회 조직을 논의하는 자리까지 마련하게 할 동력이 되었다.
먼저 출발하게 된 사업은 찬송가 편찬이다. 이미 1905년 이전부터 찬송가에 편찬은 시작되고 있었지만 교파가 연합한 찬송가의 편찬과 간행에 중점을 두고 이때가 에큐메니칼적 찬송가 사업의 첫 출발이라고 보도록 하겠다. 앞에서 언급한 1905년에 개최된 재한복음주의 선교사공의회에서 연합 찬송가를 발행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동력이 되어 추진되었다. 그 이전 1892년 북 감리교회에서 한국의 첫 찬송가인 “찬미가”가 간행되었고, 장로교회에서는 언더우드 편의 “찬양가”가 1894년에 간행 되었다. 1895년에는 북 장로교 선교부 그레함 리와 기포드부인이 편찬한 “찬셩시”가 간행되었다. 그 외에도 동아기독교의 펜웍이 편집한 “복음찬미”(1899)와 성공회의 “셩회숑가”(1903), 구세군의 “구제군가”(1908)등이 간행되었으면 이때만 해도 찬송가는 교단별로 간행되고 사용되고 있었다. 민경배, 『한국교회 찬송가사』, (서울 연세대학교 출판부, 1997), 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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