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문헌연구] 한국문학문헌연구(고활자본의 개념과 명칭, 고활자본의 창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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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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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활자본의 이해
목 차
1. 고활자본의 개념과 명칭
2. 고활자본의 창안
3. 고활자본의 주조방법과 인쇄방법
4. 고활자본과 목활자본의 식별법
5. 조선시대 고활자본
1. 고활자본의 개념과 명칭
古活字本은 흔히 1883년 《漢城旬報》를 발간하기 위해서 일본에서 수입한 이른바 新式鉛活字 이전의 우리나라 전통적인 활자를 말한다.
고활자본은 활판 인쇄를 하기 위해 쇠붙이를 녹여 주형에 부어 만든 각종 크기의 활자로, 판을 짜서 찍어낸 책을 또는 이라 일컫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또는 의 용어를 사용해 왔다. 그런데 이 鑄子의 용어는 조선조 17세기 후기 이후 쇠붙이 이외에 나무와 찰흙으로 만든 활자들이 다양해지자 넓은 개념의 활자로 쓰이기도 했다. , , 와 같은 용어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용례는 조선조 전기와 고려조의 문헌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이 시기에는 주자가 지닌 본래의 뜻대로 금속활자를 의미했음을 알 수 있다.
고활자본은 금속의 종류에 따라 , , 으로 구분된다.
또한 고활자본은 활자의 명칭에 따라 그 호칭이 다양해진다. 일반적으로 활자를 주조한 해의 干支를 붙여 , , , 등으로 일컫는다.
그 밖에도 기관명을 딴 활자명을 붙인 것은 , 이 대표적이고, 字體를 딴 활자명을 붙인 것은 이를테면 , 등이라 부른다. 이 밖에 자본의 바탕이 된 판본의 명칭을 딴 활자명을 붙인 것은 이를테면 가 있으며, 子本을 쓴 이의 이름을 딴 활자명을 붙인 것은 이를테면 , 등이 있다.
2. 고활자본의 창안
우리나라는 영토가 좁고 인구가 적어 독서와 학문하는 이들이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책의 부수는 적으면서도 여러 주제에 걸쳐 필요한 책을 고루 찍어내야 했다. 그 결과 창안해낸 것이 튼튼한 쇠붙이로 활자를 한 번 만들어 잘 간수하면서 여러 주제 분야에 걸쳐 긴요한 책을 고루 찍어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예부터 동을 불려 범종과 불상 그리고 엽전 등을 만드는 데 남다른 훌륭한 기술을 체험해 왔기 때문에, 여기에 판짜기의 粘着性 물질과 쇠붙이에 잘 묻는 먹물을 개발만 한다면 금속활자의 인쇄는 충분히 가능했던 것이다.
이러한 금속활자의 인쇄의 집념이 그 인쇄 개발의 전제적 여건 조성으로 인해 성취되어 마침내 창안된 것이 금속활자 인쇄였다. 그러나 그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지 않아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다.
금속활자의 기원설은 文宗朝(1407~1083) 기원설, 肅宗 7년(1102)의 기원설, 12세기 중기 기원설이 있으나 모두 신빙성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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