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도시 이야기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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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바다도시 이야기 독후감
베네치아 공화국 1천년사의 이야기를 다룬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읽기 전까지는 그 누구도 이 책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감상문을 쓰는 나 역시 읽기 전에는 단순한 역사 소설이려니 했다. 거의 모든 역사소설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의 순서는 정치, 경제, 문화순의 서술이 대부분이다. 이 책 역시 베네치아 공화국의 탄생에서부터 흥망에 이르기까지 서술을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서술상의 차이가 있다. 보통의 역사소설은 거의가 그러하듯 판에 박은 듯한 서술형식을 따르고 있다. 예를 들어 "몇 년도에는 어떤 왕이 지배를 하였고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당시의 경제와 문학사조는 이러이러 했다"는" 식의 결과를 전달하는 방식이 보통이다. 하지만 소설의 작가인 시오노 나나미는 그녀만의 나름대로의 역사전달방식을 꾀하고 있다. 그의 역사관이 그러하듯 역사를 평가하기보다는 과정을 추구하는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혀 생소했을 배 구조 이야기나 건축물의 생성과정, 개펄이 많은 그곳에서 어떻게 배 길을 운용했는가 하는 이야기들 말이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들이 나에게는 흥미를 자아내게 했다. 굳이 찾지 않았으면 몰랐을 이야기들이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하였고 페이지의 수를 늘려나가게 했다.베네치아상인들이 자신들의 주어진 열악한 환경을 어떻게 극복하고 당시 무역을 독점하였는가, 그 방법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욱이 베네치아는 바다로 둘러 싸엿다든가 주어진 자원이 절대적으로 빈약하다든가 하는 우리와 지리적 여건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기에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성자필쇠. 융성한 국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쇠락하고 만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단 한번의 예외가 없었던 역사적인 원리이다. 작가가 이 책의 전반에 걸쳐 이야기를 풀어 가는 키워드라고 할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그것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는 일뿐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말만큼이나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사람으로 보면 우아하게 늙어 가는 것이라고나 할까. 그것을 가장 멋지게 해낸 나라가 바로 이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 공화국이라고 필자는 이야기 하고 있다. 한번도 국체를 바꾸지 않고 천년의 세월을 유지해온 국가의 저력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인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라는 국가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단순히 베네치아의 흥망성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하여 지중해와 그 주변 바다를 누비고 다녔던 베네치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람을 제외하고는 천혜의 자원이라고는 소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던 작은 섬나라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을 독점하면서 경제적으로 유럽 최강의 해양국가가 되지만 늘 주변 강대국에 의해 시련을 겪는 모습은 세계대전 이후 고도의 경제성장을 통해 이제는 경제대국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이 처해있는 상황과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마치 작가가 조국의 국민들을 향해 여기 이렇게 우리들이랑 똑같은 처지이면서 이렇게 멋지게 살아온 사람들이 있어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일본인들도 느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인들에게 쏘아진 외침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비단 일본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뛰어난 글쓴이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직접 찾아다니며 발견한 1차 사료를 제시하고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함으로써 마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눈을 통해 역사를 보는 기쁨을 준다. 또한 베네치아를 비롯한 당시 유럽의 사정을 비기독교인의 눈으로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설명한다. 십자군의 힘으로 이슬람세력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같은 기독교의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함으로써 지금까지 치욕적인 일로 치부되던 제4차 십자군 전쟁에 관한 서술은 이해당사자였던 유럽인들의 시각에서는 베네치아를 단지 악역으로 묘사할 뿐이었지만 작가는 당시의 상황과 서로의 이해관계를 쉽게 풀이함으로써 이 사건이 단지 베네치아의 사리사욕에 의해서만이 아님을 이끌어 낸 것이 그 좋은 예이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 상권에서는 주로 베네치아의 발전과정과 성공을 다루었고 하권에서는 하강과 쇠퇴의 과정을 그리는 구성으로 있다. 로마제국의 붕괴후 훈족이라는 중앙아싱의 야만족이 유럽으로 침입, 이탈리아에도 쳐들어 왔을때 그 난을 피하여 바다 가까운 개펄로 옮겨 사람이 살수 있는 수상마을 베네치아를 건설하고 다시 그곳을 발판으로 바다로 진출하는 이야기로 시오노의 베네치아사는 시작된다. 앞은 바다이고 뒤는 야만족 내습의 위협이 끊이지 않는 한계적 역경에서 베네치아인들은 불굴의 의지와 합리적 정신으로 바다의 일부인 개펄지대의 바닷물과 개펄을 잘 관리하여 안전하고도 건강하며 온갖 산업화동과 공공활동도 가능한 수상도시를 건설한다. 그 다음 베네치아인들은 그 안전하고 건강한 수상근거지로부터 바다로 나아가야 했다. 여기서 배가 사활의 중요성을 갖게 되는데 비교적 값싸고 손쉽게 건조할 수 있는 기술과 그것을 운용하는 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 베네치아인들이 성공을 거두는 기본적 발판이 된다. 안전한 수상 근거지의 건설과 갤리선이라는 배와 항해술의 개발. 이 두 가지 성공을 기본조건으로 하여 바다의 도시 베네치아가 지중해의 여왕이라는 말을 듣게되는 무역입국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것을 대성공으로 이끈 것은 그들의 뛰어난 상업조직, 노련하고 기민하기 이를 데 없는 외교 ,그리고 겹겹이 안전장치가 둘러쳐진 공화제정치제도의 결합된 힘이었다. 실로 놀랍도록 잘 조직된 그들의 상업활동과 정치제도는 특히 중요한데 오늘날 위기에 빠져있는 우리 나라로서는 개혁의 큰 방향을 참고 삼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베네치아의 외교는 그 착실하고 현실주의적인 노선과 기민한 활동으로 동시대인과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우리는 베네치아가 주요 교역대상국에 외교관을 상주시킨 세계 최초의 나라라는 사실과 그들 외교관이 본국정부에 보내온 보고는 당시의 제1급 정보로 보관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즉 그들의 이러한 치밀함이 있었기에 당시 제일의 교역국이 가능했을것라는 말이다. 베네치아 외교망과 첩보망의 정보능력은 대단한 것이었으며 그러한 정확한 정보의 적기확보를 통해 옳은 판을 내릴 수가 있었고 쇠퇴기 비잔틴제국 치하의 동지중해와 취약한 신성로마제국사이에서 강한 해군력과 상선력을 무기로 중개인 역할을 하뎌 부를 축적하면서 두 세력을 견제하여 성공과 번영을 누릴 수가 있었다. 베네치아는 그리스교국 이었지만 철저할만큼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 종교적 이데올로기에 놀아나는 일을 피했다. 그러나 베네치아의 사활적 이익, 예컨대 제해권의 획득과 수호를 위해서는 제4차 십자군 원정이라는 종교전쟁에 뛰어드는 비용지불도 마다하지 않앗다. 베네치아는 3만3천500명의 십자군 병력수송을 의뢰받아 계약을 완전히 이행하고 십자군에 6천명을 파병한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도박을 한다. 거금의 대금 지불은 십자군의 능력부족으로 부도가 나고 정복한 땅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반대급부는 실익이 없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베네치아는 이 대도박으로 명실공히 동지중해의 여왕의 지위를 확고히 굳힌다. 결과를 내다본 냉철한 정치적도박의 승리었다.
베네치아의 성공을 가져온 요인중에는 그들이 뛰어난 뱃사람과 항해꾼들을 많이 가졌고 또 한정합자회사라는 자본확보와 위험분산을 가능케하는 훌룡한 제도를 가졌다는것을 들어야겠지만 그것은 베네치아만의 것은 아니었다. 피사나 제노바는 그런 면에서는 오히려 한 수 위였다. 베네치아가 이탈해양도시국들의 최후로 승자로 살아남게 된 중요한 원인은 정부가 상인들의 활력을 억누르는 일이 없도록 하면서 동시에 또 철저히 개입하였다는 데에 있었다. 어찌보면 오늘날 국가가 재벌을 해체하고 또 성장할 수 있도록 규제를 푸는 힘의 조절에 있어서 그들은 우리보다 한 수위라는 생각이 든다.
국유 상선단에 의한 무다라는 이름의 정기항로방식은 베네치아만이 채택한 유니크한 제도였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베네치아에서는 누구나 해외무역에 참가할 수가 있었고 대상인의 독주를 발생시키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는 피렌체에서처럼 대상인이나 대금융자본가는 끝내 발생하지 않았다. 오늘날 우리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서 대재벌을 낳고 또 그것으로 인해 나라가 경제속국에 처한 상황을 볼 때 국가와 제도가 한 나라의 흥망을 결정짓는 중요한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무다 제도에 의해서 해양무역은 사실상 많은 시민이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 되고 그래서 대중적활력이 유지될 수 있었다. 여기서 우리가 각별히 주목해야할 사실은 이러한 조치, 이러한 산업정책은 대상인의 장악아래 있는 정부가 궁리해내고 실행한 것이지 중소상인들이 자기들의 권리를 지키기위해 단결하여 그렇게 하도록 정부에 조작한 결과가 아니다라는 사실이다.
하권에서는 대항해시대의 도래와 전제적 대군주국의 출현으로 교역의 주무대가 지중해로부터 대서양으로 이행하는 전환의 시대에 베네치아가 대군주국들을 상대로 치러야 했던 빛나는 외교적, 군사적 싸움, 그리고 불가피하게 겪는 하강·쇠퇴 국면의 이야기이다. 베네치아는 15세기 중반이후 동으로는 인구와 영토의 면에서 비교가 될 수 없는 대터키제국과 200여 년 동안에 7회의 걸쳐 전쟁을 벌인다. 서쪽으로도 포르투갈, 프랑스, 스페인 등 강력한 군주국이 대포를 중심으로 한 기술력까지 갖추고 위협해와 때로는 이탈리아반도의 태반이 점령당하는 위기에 처한다. 대서양 항로의 개척은 불가피하게 지중해 세계에서의 베네치아의 경제적비중에 위축을 가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