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교육의 기점에 관한 연구 독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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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 근대교육의 기점에 관한 연구 독후감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근대교육의 시작이나 형성기에 대한 담론은 이 시기 교육을 둘러싼 논의가 형성되는데 중요한 지평을 열어준다. 이는 사료를 통해 근대적 특성을 찾아내 부각시키려는 노력이다. 봉건제의 해체와 서구 및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혼란기 구한말의 교육은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근대교육의 시작 기점에 대한 질문을 통해 구한말의 개화기와 일제강점기의 급격한 변화속에서 교육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논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현재 시점에서 덜 중요할 수 있으나 오늘날 우리 교육사 연구에 중요한 과정이 될 것이다.
Ⅰ. 문제의식
이 연구는 근대교육의 기점설정이 갖는 의미가 교육사 서술에 핵심적인 요인이라 보고 시작된다. 근대교육의 기점이라 주장하는 기존의 각 준거들 1) 배재학당설, 2) 원산학사설, 3) 18세기 서당설을 분석하여 그것이 우리교육의 전개과정, 나아가 교육사관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Ⅱ. 배재학당설에 대한 검토
학자 오천석은 우리나라 최초 근대학교를 배제학당이라 주장한다. 그 근거로 1964년 발간된 에서 1886년 설립된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통해 신교육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했다. 배재학당의 근대교육적 성격을 교육사상사적 측면(학당훈에서 나타난 교육목적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 교육운영방침(학년을 두학기로 나누고, 일과시간, 입퇴학 절차, 수업료, 성적표 등)이 구교육과 구별되는 ‘근대적 교육방식’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준거의 특징들이 전통교육의 정규학교나 서당교육에 보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오천석이 주장하는 신교육 서술에 전반적으로 잠재된 암묵적인 근대교육의 준거로 ‘교육내용의 근대성, 서구식 교사, 다양한 과외활동’을 들고 있다. 오천석의 주장과 비슷하게 차석기는 선교계 학교가 인재양성, 국가의식, 민족의식을 배양함으로써 이후 민족교육의 기본 이념을 형성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 선교계학교의 성격과 목적에 대해 분명한 검토를 요하고 있다. 미국 선교사가 한국에 입국하기 시작할 무렵 한국은 미국의 가장 중요한 침략대상이었고, 한국에 진출한 선교회는 계획적, 조직적으로 침량의 첨병역할을 했다. 그러나 배재학당을 비롯한 선교학교가 한국 근대교육 발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는 구교육의 결함을 극복하는 동시에 역사 주체를 형성해 나가야 할 근대교육의 성장과정에서 큰 약점을 구조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Ⅲ. 원산학사설에 대한 검토
원산학사는 1883년 외국의 도전과 새로운 정세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되었고, 문예반, 무예반으로 편성하였고 문무 공통과목으로 농업, 양잠 등의 실용과목을 가르쳤다. 신용하는 원산학사 설립 의의를 1) 정부의 개화정책에 앞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근대학교 설립, 2) 외세 침략이 노골화되는 지방 개항장에서 신지식 교육을 하려는 애국적 동기, 3) 외국 모방이 아니라 종래 서당을 개량서당으로 발전시켰다가 근대학교로 발전 4) 학교설립에 개화파 관료들과 민중이 함께 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미국에 대한 문화적 종속이 심각하게 논의되는 가운데 민족적 자존심을 세우는데 기여는 했다. 그러나 이 주장에서 근대교육의 준거를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공도회의 채택, 과거 교과내용이 변하지 않은 점, 춘성부지에 기록된 입학자격, 교사 등의 내용에서 근대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없다.
Ⅳ. 18세기 서당설에 대한 검토
정순우는 조선후기 사회변동에 나타나는 교육양상의 지표를 1) 소농민의 교육주체로 성장, 2) 계층의 개별적 교육구조 획득, 3) 인신적 예속관계 약화이다. 그러나 봉건교육 해체기의 제특질, 자생적 근대교육의 봉건교육과의 차별성, 자생적 근대교육의 전개과정, 서구 근대교육의 이식과의 차별성, 서구근대교육에 의한 몰락과정등의 거대한 역사적 흐름 전체를 체계화하여 제시되어야 완결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순우의 주방을 확대 해석하면 ‘18세기 후반의 자생적 근대교육의 맹아발생(서당교육)-근대교육의 실현을 위한 농민봉기 - 외세에 의한 농민봉기의 좌절 - 서구제국주의 교육의 이식 - 일제 식민지 교육’이라는 도식을 전개할 수 있다. 이것은 동학농민전쟁-의병투쟁-일제하무장투쟁으로 개화운동-애국계몽운동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정순우의 주장은 자생적 근대교육의 맹아를 봉건교육의 해체라는 점에 높이 평가할 수 있으나, 근대성의 구체적인 증거가 빈약하고 역사전개 과정에서 가정을 미리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까지는 그 주장의 정당성 확보에 상당한 무리가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서당교육이 근대교육의 실체가 아닌 것이고, 그 주장이 보편성을 갖기에는 서당교육의 변모에 대한 체계적인 증거수집과 자료확보가 선행되어야 한다.
Ⅴ. 근대교육의 준거에 대한 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