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민주주의 confuciandemo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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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유교 민주주의 confuciandemocracy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한국의 근세사 속에서 유교는 ‘위정척사’등 반개화주의 성향으로 인해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주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서양의 막스 베버가 유교를 ‘현세에의 합리적 적응“(Rational adjustment to the world)으로 규정하면서 그 보수성을 강조하였다. 유교의 ’보수성‘의 핵심은 유교의 존재론, 인식론, 당위론에 있어 서구의 보수주의와는 다른 양상을 띄면서도 유교의 많은 이론과 주의, 주장들이 서구 보수주의와는 매우 유사한 면모를 갖춘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면,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공동체주의, 우주의 질서와 연결되어 있는 도덕의 강조, 뿌리 깊은 전통주의, 배움을 바탕으로 하는 엘리트들을 인정하는 것 등 은 서구의 보수주의와 공통된 요소들이다. 즉, 유교는 전통주의, 가족주의, 도덕주의, 권위주의 등의 서구적인 측면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유교는 이런 보수성의 잔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유교는 공자에 의해서 당시의 시대상에 역행하는 과감하고도 새로운 정치의 형태로 제시되었고, 맹자에 의해서는 ’역성혁명‘의 이론으로 발전되어 갔다. 또한 한반도에 유교가 유입된 후, 조선조를 세운 역성혁명 역시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것 이였으며, 조광조 등으로 대표되는 사람의 개혁정치 역시 성리학의 보다 근본적인 보급과 확산을 꾀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유교는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는 차원의 보수 사상은 결코 아니다.
2) 유교의 진보주의
유교는 인식론과 당위론에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유교의 정치사상이 추구하는 것은 바로 위민(爲民)이다. 그리고 유교의 위민사상 또는 ‘민본주의(民本主義)’는 진보사상의 민중주의와 매우 흡사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에는 ‘민’에 대한 이야기가 52군데나 있다. 대부분은 공자가 민의 편에 서서 군주를 꾸짖는 장면이고, 하늘이 군주에게 보호하라고 지정해준 백성에 대하여 맡은 바 책임을 다하라고 역설하는 장면들이다. 유가의 입장에서 볼 때 민은 마땅히 보호받고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되는 존재이다. 그들의 안녕과 행복 경제적 안정과 도덕성 교육 등 모든 것은 오직 왕이나 황제, 그리고 그들의 신하와 관료들의 전적인 책임이다.
3) 유교의 이분법적 규정의 어려움
보수주의란 일반적으로 진보주의 대두 이전에 있었던 전통정치에 대한 이해를 유지하고자 한다. 따라서 한국에서의 진정한 보수는 전통 유교 정치사상에 바탕을 둘 수 있다. 즉, 전통을 옹호하는 사상은 맹목적으로 과거를 미화시키거나 ‘복고’를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전통이 추구했던 가치와 이상에 대한 신념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이러한 신념은 근대사상과 진보주의의 논리와 그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유교는 이러한 보수주의 측면만 가지고 있는 사상이 아니다. 유교 정치사상의 핵심은 ‘위민’사상이며 유가의 민본주의는 서구의 진보주의에 못지않은 민중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위민사상이 산업사회에 발탁되어 민중의 복지 문제 해결에 앞장 설 수 있다면 유교는 진실로 진보적인 사상으로 남을 것이다. 이처럼 유교는 현대의 진보와 보수의 맥락 속에서 충분히 이해되어 질 수 있다. 따라서 유교를 보수냐 진보냐 하는 이분법적 논리 속에서 규정하는 것은 힘들다. 오히려 유교야말로 서구 근대화가 진보 대 보수라는 이분법적 정치적, 사상적 구도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사회적 모순을 해결해 주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유교는 어느 한쪽 측면만이 강조되어 왜곡되는 현상을 방지하고 있다.
2. 한국의 유교
1) 한국에서의 유교의 의미
우리의 정체성은 유교에 의해서 규정되어 있다. 유교는 한국인들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추상적인 사상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부닥치고 경험하는 현실이다. 집안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정당에서, 삶의 그 어떤 영역에서도 한국인들은 유교적인 가치관과 사고방식, 행동양식을 실천하며 접하고 있다. 유교에 대한 논의가 나오면 누구나 한마디씩 할 수 있는 충분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다. 어쩌면 한국인들은 그들 스스로 유교에 대해서는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다. 모든 일상 속에서 유교적인 가치와 행동 양식을 체험하고 있는 한국인이기에 유교경전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그 어떤 전문가 못지않게 무엇이 유교적인 삶이라는 것을 나름대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의 유교에 대한 반응은 매우 즉흥적이고, 감정적이며 격렬하다. 한국인들은 너무나도 유교적이기 때문에 유교에 대해서 결코 객관적이거나 중립적일 수 없다. 진보주의자, 여성, 그리고 특히 페미니스트들에게 유교는 너무나도 싫고 우리의 삶의 고질적 병폐며 따라서 하루 빨리 청산해야 할 구습에 불과하다. 반대로 보수주의자들, 남성들, 특히 가부장적인 체제 속에서 권위와 특권을 누려온 사람들에게 유교는 기득권을 유지하게 해 주는 것이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존속시켜야만 하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유교는 객관적인, 중립적인, 학술적인 입장에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의 차원에서만 이해되고 논의되고 있다. 이렇듯 유교는 우리의 삶에 가까이 있지만, 그 진정한 의미를 파악하기에는 객관적인 시야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학문의 객관성을 기대하기도 힘든 것이 사실이다.
우리사회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체제하에서 똑같은 일상생활들이 진행된다고는 말하기 힘들다. 우리의 국가체제, 정치체제, 경제체제는 모두 지난 100년간 서구나 일제로부터 수입된 것들이다. 그리고 이것들을 작동시키는 사상도 민족주의, 자유주의, 시장주의, 민주주의 등 최근에 도입된 외래사상들이다. 한국인이 일상 속에서 접하게 되는 유교는 논리적이고 유기적이고 정합성을 상실한 파편화된 유교다. 따라서 전통적인 유교사상이 더 이상 우리사회를 운영하는 중심사상이 아니라고 말 할 수가 있다. “전통 유교 사상은 오늘날의 주류사상인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와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 “유교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에 비교해 보는 것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유교적 토양위에 정착시키는 작업이며,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를 유교화 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며, 유교를 보편화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한때, 한국에서 자본주의는 진보, 진영에 의해서 거부되었고 민주주의는 권위주의 정권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그러나 이제 자본주의를 거부하던 진보진영은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자본주의의 꽃인 시장경제를 확립하는 역사적 사명을 띠게 됐다. 반면 민주주의를 거부하던 보수진영은 정권을 상실하고 야당 노릇을 해 보면서 민주주의를 공고히 해야 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그 결과 이제 좋든 싫든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경제와 정치의 기본 틀로서 자리 잡게 되었다.
2) 유교적 유산의 부정적 작용 VS 덕성
민주주의의 공고화 단계에서 일반적으로 유교적 유산은 민주적 시민사회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유교의 전통은 한국에서 복수의 시민사회가 발전하는 것을 지연시켰다. 유교는 갈등하는 세계에 대한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을 인정하지 않는다.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정통은 시민결사체 내부의 결사체들 간의 자유롭고 합리적인 심의를 억누르는 것이다. 기존의 단체의 공식적인 견해에 반대하는 사람은 "불순"하고 "부정"하며, "이데올로기적으로 오염"된 자로 분류되었다(Steinberg). 유교 정통의 세습은 한국의 시민사회에 다른 견해와 관점을 관용하지 않는 문화적 순응주의를 지속시켰다.
둘째, 유교의 가장 특징적인 유산들 중의 하나인 강한 가족주의는 파벌주의와 지역주의를 낳았다. 유교에서 가족은 세계라는 동심원의 중심에 놓여 있다. 학교, 지역, 그리고 국가에서의 관계들은 대개 온정주의적인 가족 관계가 다른 수준으로 확대된 것이다. 가족주의는 "가족"과 외부인, 즉 내부의 "우리"와 외부의 "그들" 간의 강한 분리감을 발생시킨 원인이다. "우리"와 "그들"간의 생생한 경계감은 신뢰는 자동적으로 가족 구성원에게 확장되어야 하지만, 모든 타인들은 의심을 품고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인들에게 결사체를 구성하도록 자극하는 것은 동일한 정책을 선호한다는 그런 공감대가 아니라 혈연, 학연과 종교적 연대에 기초한 한 가족과 같은 네트워크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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