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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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7세기와 18세기를 거치면서 유럽 여러 나라들이 왕정타도를 위한 혁명을 펼치게 되었고, 세계적으로 자유주의 열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정치형태에도 혁명적인 변화가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정착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의 사례로 볼 때 여러 혁명 등 정치형태가 변모 할 때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대한민국에도 민주주의가 정착하기까지 여러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 1948년 민주공화국이 들어서기는 하였지만 군부독재 등의 독재가 만연했고 실제로 민주주의의 시기라고 표현할 수 있는 시기는 매우 짧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우리나라의 경제영역과 사회문화 영역에는 더 많은 민주주의와 인권보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개개인들이 그들의 안위보장을 위해 국가를 형성한다는 사회계약설은 지배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이론이라고 볼 수 있으나 권력자가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할 경우 공동체의 질서를 문란하게 만들 수 있다. 고로 법과 권력분립은 역사적으로 권력을 규율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였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실현에 권력의 규율이 매우 중요해서 성서에서도 그러한 규율들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있다. 구약성서에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첫 번째는 지배자의 권력을 옹호하는 입장이고, 두 번째는 예언자적 전통을 고수하는 입장이다. 먼저 사무엘서에 따르면 왕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통치체제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여기서 왕의 지배는 치안과 국방의 필요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으며 이러한 왕권 옹호 전통은 성서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서에서는 왕을 옹립할 때의 문제점을 언급하고 있다. 백성이 군역과 노역을 담당하게 되면 결국 백성은 왕의 종이 되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예언자들이 권력집중 현상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 것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민족적 특징에서 비롯된다. 오랜 기간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하다가 강제노역과 압제에서 벗어나 만들어진 국가로써의 이스라엘은 지배와 억압에 진절머리가 나있는 상태가 되어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따라서 예언자들이 권력 집중현상에 대해 비판적이며 전제군주제를 부정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들은 야훼의 주권 아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그들은 사회 악폐의 원천인 토지소유제를 부정하고 확대가족 단위로 토지의 세습적 사용권만을 갖는 자급자족 공동체를 세웠으며, 공납과 군역, 강제노역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하는 강압적인 국가권력을 부정하였다. 이러한 이스라엘 공동체 전통을 이어받은 예언자들은 이스라엘에 군주체제가 성립된 이후 권력독점과 이에 따라 나타나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문제들을 지적하고 비판하였다.
신약성서에서 또한 권력에 규율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신약성서 또한 두 가지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나는 국가권력을 인정하는 흐름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국가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흐름이다. 로마서에서는 국가권력을 세계의 한 질서로 인정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하느님이 국가 권력을 세웠다고 말하며 권력과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권세가 하느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은 최종적인 주권이 권력자가 아닌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권력을 사용한다면 그것을 옳지 못하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예수님은 사도 바울과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했다. 예수는 지배를 위한 권력을 부정하고 권력을 가진 자가 남을 섬기는 일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가르침에 따르면 스스로 낮아지기 위해서는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을 제거해야 하는데 남에게 나의 의지를 주장하지 않고 남과 자신이 다름을 분명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예수는 남을 위해 봉사하는 삶이 권력과 지배의 문제를 극복하는 대안적인 삶임을 가르쳤으며 이 개념은 오랜 기간 망각되어 있었지만 앞으로 대안적인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예수의 가르침은 새롭게 조명될 것이다.
위에서 설명했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초기 그리스도교는 국가권력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것은 초기 그리스도교가 로마에 의해 박해를 받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제정일치적인 성격을 가지게 되면서 종교와 정치는 견고한 동맹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러한 동맹은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종교개혁 이후에 종교와 정치의 관계는 새롭게 정리되었다. 이에 대해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들이 몇 있는데 그들이 바로 루터와 캘빈이다. 루터는 두 왕국 론을 주장했는데 여기서 두 왕국은 교회와 국가를 의미한다. 루터의 주장이 궁극적으로 시사하는 바는 국가권력과 교회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전통적인 동맹관계를 파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루터가 국가권력에 저항하거나 혁명을 도모하는 일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독재적인 권력이 존재하더라도 이가 무정부상태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캘빈의 주장은 이와 조금 다르다. 먼저 캘빈은 국가의 형태나 헌법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모든 형태의 지배를 거부했으며 신민이 억압을 회피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는 헌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폭압적인 권력자에게 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대 사회에 들어와서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진 대표적인 학자는 칼 바르트이다. 그는 골로세서를 근거로 하여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했다. 바르트는 그리스도 통치론을 앞세워 인간의 양심과 신앙까지도 국가의 지배 아래 두려고 했던 전체주의에 대항하였다. 또한 바르트는 자유와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스도교에서 언급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쟁점은 민주주의뿐이 아니다.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들이 있다. 시민혁명과 종교개혁들의 정신은 자유주의이다. 인간의 자유와 신앙의 자유, 양심과 사상의 자유 등은 그리스도교에 의해 먼저 선취되었던 정신들이다. 근대 이후로 여러 국가들(우리나라를 포함한)의 헌법에는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하고 있다. 우리가 인권이라고 통칭하는 대부분의 권리들은 자유권에 해당된다. 이처럼 자유권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에서도 자유권을 세분화하여 신체의 자유, 사회 경제적 자유, 정신적 자유, 소유권 행사의 자유 등으로 나누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헌법뿐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에서도 성서적 증거를 바탕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확고하게 명시하고 있다. 먼저, 성서에는 우리가 하느님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존재를 하느님과 같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은 아니지만, 하느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존엄한 존재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은 신성모독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주장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은 원죄를 지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에 의해 죄가 종식되고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는 지배의 대전환이 일어난다. 이로 인해서 인간은 하느님의 통치에 참여하여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 아직도 준동하고 있는 죄의 세력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옹호하여야 한다는 성서적 근거를 깊이 들여다보면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으로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최소한의 장치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은 고립된 개인이 아니기 때문에 관계들 속에서 사람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적 기본권을 제정하여야 한다. 또 생태계의 안정성과 건강성을 보전하는 가운데 삶의 형성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정하여 헌법 규정으로 명시해야 한다.
그리스도교가 인권 수호에 앞장섰던 그리고 앞장서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의 수업시간에도 찾아볼 수 있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오랜 기간 이집트라는 강대국의 식민지로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항상 강대국들의 손쉬운 표적이 되곤 했다. 이스라엘은 꽤나 가난하고 어려운 나라였다. 예수의 출생 또한 그랬다. 동정녀의 배에서 나서 목수로 살았다. 말이 좋아서 목수지 지금으로 보면 일용직 노동자 정도 되는 것 같다. 예수는 20대에 나사렛을 떠나서 요한의 제자가 되었지만 스승 요한은 감옥에 갇히고 만다. 예수의 활동범위 또한 사회지배층과는 거리가 멀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루살렘을 제외하고는 도시에 가지 않았다. 예수의 행적은 주로 소작농이나 육체노동자였던 농민계층이 주로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나 촌락에서 행해졌다. 선생님이라고 과대포장 되었지만 그는 그저 이야기꾼 이었다. 예수의 행적 또한 인권보호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는 주로 세리와 죄인들이라고 불리던 사람들과 어울렸고 그로 인해 비판받았다. 또한 그는 차별없는 교제를 통해 비판받기도 했다. 심지어 그는 불가촉천민이었던 자들과도 함께했다. 예수는 지배층의 착취에 저항하라고 가르쳤다. 이러한 행위들에서는 동학농민군의 수장이었던 전봉준과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전봉준은 조선 말 나라가 망해가는 시점에서 농민들의 삶이 살기 힘들어지자 지배층의 착취에 주도적으로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스라엘의 살기 힘들었던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예수님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이처럼 힘든 배경에서 태어나 힘든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지배층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예수의 자세를 배우고자 하는 그리스도교는 인권 수호 운동에 그 어떤 종교단체보다도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금발머리에 인자한 얼굴을 띄는 예수’ 이것이 우리 머릿속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했다. 서남아시아인의 얼굴에 막노동꾼 정도의 직업을 가진, 추종자는 많지만 죄인들과 함께하며 세상 사람들의 시선으로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행실을 계속해서 실천해 나갔던 모습이 바로 예수의 본 모습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힘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들의 삶의 질 개선에 누구보다 힘썼던 것 또한 예수의 모습이다. 사회 가장 높은 곳에서 예수의 능력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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