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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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과의 대립과 사회주의 체제로의 이행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949년 10월 1일, 천안문 누각에 선 모택동은 중화인민공화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마르크스주의를 가치로 내건 공산당이 지도하게 되었지만 이 때 부터 사회주의 체제의 시작이라 볼 수 없다. 이에 대해서는 건국 직전에 발표된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강령’에 잘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강령에서 국가는 경제의 여러 방면에서 “국영 경제 · 합작사 농업생산합작사의 기초단계로서 노동력의 공동을 목적으로 하는 호조조(互助組)가 1952년부터 전국적으로 조직되었다. 이어서 제2단계로서의 토지의 출자와 통일적인 경영을 목적으로 하는 초급농업생산합작사로 이행하였으며, 제3단계로서의 생산수단의 공유제(共有制)를 목적으로 하는 고급농업생산합작사가 1956년까지 기본적으로 달성·완료되었다. 그 후 고급농업생산합작사는 1958년의 ‘대약진’ 과정에서 합병되어 ‘인민공사’로 이행되었다. 사회주의적 국영경제·합작사경제·단독경영경제·자본주의경제의 네 가지로 구성되는 과도기의 경제구성체 중에서 단독경영경제가 합작사경제로 이행하는 것으로 정의된다.
경제 · 농민 및 수공업자의 개인 경제 · 사적 자본주의 경제 및 국가자본주의 경제를 조정하고, 각종 사회 경제의 요소들을 국영 경제의 지도하에 분업 · 협업하여 각각의 것을 얻음으로써 좀더 사회 경제 전체의 발전을 촉진한다.”[제 26조]고 하였다. 뿐만아니라 “노동자 · 농민 · 소부르주아 및 민족 부르주아의 경제적 이익 및 그의 사유 재산을 보호하고 신민주주의의 인민 경제를 발전시켜 농업국을 공업국으로 바꾸고자 한다.”[제 3조]고 나아갈 바를 밝히고 있다.
이 강령을 꼼꼼히 읽어본 후에 얻게 된 전망은 다음과 같다. 즉, 근대산업에서는 국가자본주의[국가 자본과 민간 자본이 합작한 것]를 통해 국가 자본이 민간 자본을 흡수하고, 수공업이나 소자본은 합작사로 조직하는 한편, 토지 개혁 후 농업도 점차로 합작사(협동조합)로 조직하여 얻게 된 결과가 바로 사회주의이다. 다만 강령에서는 이상과 같은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결코 명시하지 않는다. 또한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매개하는 국가자본주의에 대해서도 “필요하거나 또는 가능한 조건하에서 사적 자본을 국가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발전시키려고 장려”[제31조]하는 것으로, 또한 합작사에 대해서도 “자원(自願)과 호조(互助)의 원칙에 따라” 조직한다고 되어 있다. 이는 민주주의로 변해 가는 데 얼마간의 시간을 들일 것이라는 의사 표시인 동시에 가까운 장래에 사회주의로 나아가지 않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치에 있어서도 “신민주주의, 다시 말하면 인민민주주의 국가로서 노동자 계급이 지도하고 노 · 농 동맹을 기초로 하여 민주적인 여러 계급과 국내의 각 민족을 결집한 인민 민주 독재를 실행”하는 것이라고 하여 공산당의 지도를 명기하지 않고 있다. 물론 공산당이 노동자 계급의 전위를 자임하고 있고, 또한 이른바 민주적인 여러 당파도 공산당에 의해 지도되는 것은 이미 승인된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로는 공산당의 독재일 수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 민주적으로 처리하려는 분위기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공산당 지도자의 발언
1950년 6월 초순, 공산당은 국내 개혁과 경제 부흥을 과제로 하는 7기 삼중 전회를 개최하였다. 거기에서 모택동은 “일부에서는 자본주의를 빨리 소멸시키고, 사회주의를 실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 이러한 판단은 중국의 실정에 맞지 않다.” 마오저똥(毛澤東), “국가의 재정 · 경제 상태의 기본적인 호전을 위해 싸우다”, 1950년 6월 6일. 『毛澤東選集』 제5권(外文出版社, 1977)
고 하였다.
계속되는 정치협상회의의 전국 위원회에서는 전쟁을 통해서 국민당의 잔존 세력을 일소하고 토지 개혁을 하고 나서 이로부터 “다년간에 걸친 경제 건설과 문화 건설”을 통해 먼 장래에 사회주의 사회를 천천히 민주적으로 실현해 간다고 천명하고 있다. ‘먼 장래의 것’이라고 하는 표현과 함께 사회주의 중심에 있어서도 마르크스주의 본래의 유토피아가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 이후에도 유소기(劉少奇)나 주은래(周恩來)도 동일한 내용의 발언을 하였다.
(3) 경제 부흥과 ‘국가자본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