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루터는 분리할 생각도 없었고 또 분파의 창시자적 기질도 없었다. 보편 교회의 통일성을 누구보다 귀중한 것으로 여겼으며, 그가 원한 것은 이 보편 교회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가 자기의 이상에 동조한 공동체들에게 하나의 조직을 부여할 생각을 한 것은 수년이 지나고 난 뒤였다.
1. 비텐베
서론
21세기는 컴퓨터의 발달로 그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가도 있다. 인터넷을 통한 수많은 정보는 상상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많은 양을 전달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사회 교육은 빠른 속도로 발전해 가고 있지만 교회의 교육은 거북이걸음 수준이다. 오늘날 기독교 교육
루터, 칼빈 그리고 많은 주석가들이 인정하는 바와 같이 족장들의 발자취는 그렇게 빛나는 발자취이기 보다는 빛바램으로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아브라함은 겁에 질려서 사라가 자신의 아내임을 부인하여 그녀로 하여금 간음죄를 지을 뻔 하도록 하였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닌 두 번씩이나 그러하였다.
루터, 츠빙글리, 칼빈같은 인물들의 관심은 바로 이곳이었다. 페브르의 말에 의하면 “ 파렐은 사제들에게 잘못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가 아니라 잘못 믿고 있는 것에 대해서 였다” 15세기에는 존 위틀리프, 롤라드파, 흐루테와 공동생활 형제단, 후스와 그 제자들이 출현했다. 그리고 다음세기의 인문
Ⅰ. 개요
1517년부터 1521년 사이에 루터는 종교개혁의 3대 저서를 저작하였다. 독일의 그리스도인 귀족들에게라는 글에서 루터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평신도나 사제나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했다. 교황이라면 최고이고 교황만이 영적인 권한을 가진다,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하
Ⅰ. 서론
16세기에는 루터의 개혁사상을 순수히 전후관계에 비추어 연구하려는 시도가 좌절되었었는데, 그 이유는 종교개혁자들과 로마 카톨릭 적대자들 사이의 대립으로 인한 것이었다. 즉 로마 카톨릭 학자들은 전체 프로테스탄트를 붕괴시킬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루터를 공격하여 그가 정신착
2. 루터(Martin Luther, 1483-1546)의 목회
루터(Martin Luther)에게 있어서 목회의 제일 관심은 말씀선포였다. 그는 영혼의 병 치료를 위하여 말씀선포에 중점을 두었으며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항하여 교회의 권위보다 말씀의 권위와 개인적 신앙의 자율권을 내세웠다.
5. 칼빈(John Calvin, 1509-1564)의 목회
칼빈
루터와 칼빈은 종교 개혁의 선두 주자로서 그들이 내세운 교회론이 지금 오늘날에 있어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비스(PaulD.L.Avis)는 종교 개혁자들의 신학에 있어서 교회 라는 저작에서 루터와 칼빈을다음과 같이 대비시켰다. 루터는 일차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복음의 순
1. 서 론
신앙의 멋진 사나이’ - 이 말은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도 언제나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며 늘 ‘신앙의 시련’에서 세상의 만 가지 현상을 새롭게 피어나게 한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1483-1546)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1517년까지 수도원 골방에서 세상과 개인 영혼의 구원이라는 엄청난 주제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삶의 계속은 죽음에로의 접근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마음이 무거워지고 답답해지는 것도 어쩌면 죽음의 무게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때를 생각하거나 어린이들을 보면 근심, 걱정이 안 보이고 무엇인가 마음이 편안해 보인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얼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