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해와 6·25전쟁의 종전을 주도했다. 1953년 한국 정부의 휴전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휴전협정을 조인한 직후인 그 해 8월 8일 한국 정부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합의하고, 10월 1일 정식으로 조인했다. 이 조약에 따라 미군은 한국 영토와 그 주변지역에 합법적으로 주둔할 수 있게 되었다.
미군이 노근리 주민들을 학살한 사실이 최근 폭로되었고, 주한미군에 의한 환경파괴문제도 사회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미군의 범죄가 잇따르고 있지만 sofa의 불평등성 때문에 한국정부가 형사처벌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자, 이 협정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
한반도 평화체제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북핵 위기의 해결은 아직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고 주한미군 조정은 우리의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는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적 여건의 개선과 맞물려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민족과 국제의 슬기로운 공조
머리 말
전 세계 나라에서 20세기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기 위한 거대한 행사가 열렸다. TV중계 프로그램을 보거나 또는 당일 행사장에 있었던 사람들 모두 자신이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에 흥분되고 감격스러웠을 것이다. 새천년은 이렇게 지구상에 살
함께 미군이 우리나라에 주둔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고조되었고, 미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인식 재정립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후 우리는 미국 정부의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게 되었고, 미군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은 주한미군 철수라는 첨예한 문제에 이르게 되었다.
미군도 미측의 요청이 있으면 석방해 신병을 인도할 수 있다. 이쯤되면 과연 우리나라가 주권국가가 맞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것이 바로 미군들이다. 범죄를 저지르고 한국 경찰에 붙잡혀도 마구 소란을 피우고, 오만할 수 있는 것은 협정에 따라 한국의 수사기관이 자신을
주한미군과 관련하여 한국안보의 전반을 논한다면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이 산재해 있으나 연구의 주제에 걸맞게 군사 안보 시스템의 문제와 발전방향에 초점을 둔다.
첫째, 안보의 개념과 이론을 개괄하여 안보에 관한 총체적인 모습을 살펴본다. 그 후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 정세에 관
그 다음해인 1948년 9월 15일부터 1949년 6월까지 3단계에 걸쳐 500여명의 군사 고문단을 제외한 전 병력이 철군을 완료한다. 이는 당시 이승만 정권의 강력한 요구와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이후 미국은 1950년 1월 12일 ‘애치슨 선언’을 통해 극동지역에서의 방위선을 알래스카, 알류산열도, 오키나
주한미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는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미군범죄, 환경오염, 점령 순이었다. 구체적인 주한미군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에서 설명하기로 한다.
△북한에 대한 인식
△미국에 대한 인식
남북정상회담, 매향리 사건,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협상 등 주한미군의
이들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시민단체들은 최근 주한미군과 관련한 몇 가지 사건들을 계기로 주한미군의 지위를 규정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불평등한 조항의 개정과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군 및 역할의 재조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정보시대를 맞이하여 인터넷을 통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