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장과 악부를 구분하지 않고서 사용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초기(태종~세종)에 만들어진 악장들의 경우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대다수가 형태적인 측면에서의 유사성을 보이는데 김광순외, 국문학개론, 새문사, 2003년, p.127
단순히 4언8구라는 형태적인 측면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첫
(景幾體歌)이다. 넷째 시대 문학의 주된 담당층은 신흥사대부이다. 넷째 시대는 경기체가시대라 할 수 있는데, 더욱 포괄적으로 지칭하자면 교술시와 서정시의 공존시대라고 해도 좋겠다. 넷째 시대 제1기는 고려 후기이고 그러다가 조선왕조 건립 후 악장이 제정되면서 넷째 시대 제2기가 시작된다.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훈민정음 창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의 국문학의 출발을 가져왔으며, 문자 생활의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둘째, 형식면에서는 운문 문학이 주류를 이루어 시조, 악장, 경기체가, 가사 등이 지어졌고, 내용면에서는 유교적인 이념과 상류 사회의 생활이 중심이 되
수 있다. 사대부의 경기체가는 악장으로 입악된 작품과 개인의 이상과 포부를 담은 것으로 나뉜다. 예조 찬진의 경기체가는 국가의 공식 의례에서 사용될 목적으로 창작된 것이다. 불교계 경기체가는 왕실 측근의 승려들에 의해 지어져 왕과 신하들이 참석한 불교 의식에서 불렸을 가능성이 많다.
악장 등 시조보다 긴 형태의 우리 고유의 노래를 통칭한 것이다.
歌詞란 명칭은 대개 음악적인 면에서 ‘우리말 노래’를 뜻하나, 일반적으로 노랫말 즉, 노래의 臺詞를 뜻하는 말이다. ꡔ樂章歌詞ꡕ에 쓰인 ‘歌詞’란 용어는 漢詩로 된 樂章에 대한 우리말 노래란 뜻으로, ꡔ芝峯類說ვ
악장 문학의 대표작으로써 국어국문학적인 측면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여말선초의 여진족과의 관계를 밝혀주는 귀중한 사료이기도 하며, 주석은 역사와 지리적 측면에서도 가치가 있다.
본고에서는 앞서 잠시 언급한 「용비어천가」의 국어국문학역사학 측면의 가치 중에 국문학
악장이라는 새로운 시가의 형태이다. 고려시대에 발생한 별곡·가사·시조 등은 이 시대에 계승 발전을 보아, 시가문학이 무르익는 시기를 이루었고 이것이 다음에 오는 근대문학에 풍요한 유산이 되어줌으로써 그 문학적인 특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참고도서-
조동일, 서종문 <국문학사>,한국방송통신
훈민정음의 반포로 국문학 전개의 기초를 세우며 구비문학의 정착과 국문학의 융성의 발판이 되었다. 또한 훈민정음 창제이후 언해 사업이 활발하였으며, 조선 건국 찬양과 왕실 번영을 축원하는 악장의 출현이 있었다.
고대소설 중에는 한문소설이 발생하였고, 경기체가 붕괴 후 가사 출현과 시조의
국문학이 자리를 잡자 구비문학을 기록문학으로 발전시키는 데서도 결정적인 계기가 생겼으며, 국문학이 중국 전래의 규범에서 벗어나 민족문학으로서의 방향을 확고하게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조선 전기의 문학
시가문학
조선전기 시가문학은 크게 교술시인 악장경기체가가사와 서정시인
국문학은 言志로서의 시는 한시에게 그 영광을 돌리고 오직 永言으로서의 歌를 겨우 음악의 그늘 밑에서 전수하면서 그 명맥을 이어 왔을 뿐이었다. 이렇게 불모적인 풍토 가운데서 자라난 국문학의 시가는 기형적으로 발전하면서 민간 전승적인 방법으로 유전하다가 다해이 음악면의 요구에 응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