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조약이 체결된 지 100년, 광복을 맞이한 지 60년이 되는 2005년에도 우리는 아직까지 “친일의 추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일본은 독도를 내놔라, 국제 사법재판소 가자며 떠들고 있고 이런 사태를 ‘맞아죽을 각오하고’ 한국과 일본 중 누가 더 냉정하니 마니 책으로까지 써서 이야기한 어느 유명
담론은 국가의 공식적인 민족주의 교육에 기인한 것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 보았다. 물론 남한국가의 공식교육 이전에도 국민들 사이에 반일(反日) 감정과 같은 강한 민족주의적 정서가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저항적 성격을 띤 외세에 대한 반감이나 또는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나
체 게바라와 노암 촘스키는 똑같이 1928년 출생하여 세상의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 막스와 더불어 이들 같은 위대한 혁명가들의 모든 글과 실천이 모두 20대와 30대초에 이루어지는데 20~30대에는 인본주의적인 관점을 가지다가 40대에 들어서서 결정론적 이론을 확립하고 60을
일반 대중에게도 널리 알려졌던 작가로 꼽힌다. 19세기 영국 사회에서도 동시에 많은 비판과 찬사를 불러 일으켰던 「제인 에어」는 '오랜 세월에 걸쳐 온갖 비평을 이겨내고 남아서 널리 애독되는,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현재에도 교훈과 감동을 주는 작품'이라는 '고전'의 정의에 걸맞게 지금도 세
[1] 20세기 후반 종교문화사는 변화의 임계점 통과
지난 20세기 100년간 일어났던 의미심장한 역사적 사건들을 종교문화사적 측면에서 볼 때, 야스퍼스가 말한 인류사의 '차축시대'이후 최초로, 전 지구적 차원에서 세계 고등종교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진리의 대화, 평화실천의 모색을 하게되었다
식민주의는 과거의 일이 아니며, 반식민 투쟁은 여전히 미완이기 때문이다.
셋째,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단어는 주로 서구 학계에서 유통될 뿐 정작 이 단어가 지칭하는 담론, 즉 탈식민주의의 실천이 요구되는 지역들에서는 아직도 생소하게 여겨진다. 이는 식민주의, 반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식민주의 비평을 일관성 있는 실천 영역으로 보기를 거부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게이츠가 말한 ‘주변부의 확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 시대에는 수많은 민족, 언어, 종교, 인종, 공동체, 하위문화들이 저마다 ‘목소리 내기’에 열중하고 있다. 이 가운데 어느 것이 정확히 탈식민적이고 어느
식민주의를 자행하는 일본을 상징
(3)아끼꼬 호미 바바에 따르면, 아끼꼬는 피지배 문화의 잡종성을 나타내는 인물로 신식민지에 저항적인 모습을 보인다.
호미 바바는 피지배 문화의 잡종성에서 식민지 담론의 극복 가능성을 발견하였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식민주의자들은 피식민지인들
일으켰고 동양은 뒤늦게나마 근대의 하부주체가 아닌 당당한 주체로서 참여하려는 탈식민주의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는 동양과 서양을 구성해 왔던 지식체계에 대한 전면적 재해석 작업으로 이어졌고 동․서양의 이분법식 사고 자체를 해체해야 한다는 인식이 싹트고 있었다.
한류 담론의 발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