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예배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지구촌의 현실은 어느 한쪽 구석을 드러내지 못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지구촌의 개방과 더불어 이번 세기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오늘의 예배 표현에 새로운 역동성을 진작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그리스도교
운동 소식을 전하며 한국선교사들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 도전을 준다.
존스톤의 설교는 한국에 파송받은 선교사들의 시각을 바꾸어준다. 평양주재 한국의 선교사들은 존스톤으로부터 인도 부흥 소식을 전해 듣고 자신들이 가졌던 시각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존스톤은 서울선교사 사
교회 밖으로부터 유입되어 들어온 영향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현대 교회가 경건을 가장하여 다양한 종교의 배경 속에서 나름대로의 경건을 찾고 있다는데 있다.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사라져 버린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교
운동은 미국에서도 크게 영향을 미쳐 미국 감리교회를 형성하였고, 대교단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감리교내의 성결운동은 약화되는데, 이때 다시 18세기에 일어났던 웨슬리의 성결운동을 회복하려는 자들이 감리교회 안에서 나타나 활동하기 시작했다. 1867년에 전국성결연합
개혁주의 역사가 조지 말스든(George M. Marsden)이 지적한 것처럼 사경회가 미국 부흥운동의 토양을 제공했듯이 한국의 사경회도 한국교회 부흥운동의 밑거름이 되었다. 때문에 한국교회 부흥운동은 말씀과 기도를 통한 전형적인 부흥운동이었다.
둘째,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지리적 정치적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