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일간의 각축의 대상이자 전장의 일부가 되었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였다. 그리고 인하여 얼마 안 있어 경술국치의 치욕적인 한일강제 병합하게 되 한국은 일본의 완전한 속국이 되게 되었다.
이 장에서는 러일전쟁에 대한 각국의 인식에 대해 전반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들어가기
서구 제국주의의 마수가 드디어 동아시아에까지 그 손길을 미쳤다. 러시아, 프랑스, 영국, 미국 등과 같은 열강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동아시아에 대한 패권을 차지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열강의 침탈에 대한 동아시아 3개 국가 - 청, 일본, 조선 - 의 대응은 각기 달랐다. 청의 경우 무역은
인식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돌이켜 보건데 한일관계에 있어서 과거사 마찰은 90년대 이래 그 심도와 빈도에 있어서 더욱 격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냉전의 종언과 공산권의 몰락에 의해 종래 한일관계의 구심력으로 작용하였던 반공연대의 접착제가 상대적으로 약해짐에 따라
가해오던 때이기 때문에 그다지 큰 실효성을 거두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이후로 친위연대는 별다른 병화가 없이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기 이전까지 규모면에서 양적으로 확대되고 질적으로 정예화 되면서 편제상으로 4천여 명 병력을 유지함으로써 시위대와 함께 중앙군의 부력부대가 외었다.
러일전쟁 종군기자로 방한한 것을 계기로 한국을 주목하고, 한국의 국권 수호운동과 독립운동을 음양으로 지원한 사람이다. 제국주의 우방으로서 일본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 그들이 주도하던 수많은 만행을 직접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비판한 매켄지는 한국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국가의 팽창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