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을 실천하고 경험하는 데에도 동원될 수 있는 유효성을 지니고 있다.
(류수열, 「문학 지식의 교육적 구도」, 국어교육학연구 25집, 국어교육학회, 2006.)
★ 텍스트적 지식 : 본문 자체에 대한 앎.
★ 콘텍스트적 지식 : 작품의 존재 방식이나 문학적 관습, 작가와 독자 등 작품의 향유에 참여한 주
문학외적인 요소 즉 그 내용상의 이유로 화제가 되는 경우는 일시적이고 한정적인 현상이 되어 버린다. 실험적인 요소는 대체로 그렇듯이 다시 보면 우스꽝스러워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잠시 관심을 가지게 했다가는 이내 관심 밖으로 멀어지게 된다. 이런 경향이 주체적이지 못한 독자들
독자반응 이론(또는 독자반응 비평)은 영미를 중심으로 등장한 이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두 이론은 Iser를 제외하고는 서로 어떠한 접촉도 없었고 서로 영향을 끼치지도 않았다(Benton, 1993). 여기서는 반응중심 문학교육의 이론적 출발이 되는 미국의 독자반응 이론에 한정하여 논의를 전개하기로 한다.
문학교육도 거의 소용이 없어진다. 그런 까닭으로, 시를 읽으면서 사사로운 개인적 경험에 근거한 연상이나 기억에 의지하여 과도한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그것은 문맥 속에서의 언어조직에 충실을 기해야만 하는 시분석 태도에서 분명히 마이너스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하지만, 독자가 사회
독자에 의한 수용을 배제함으로 독자의 위상을 폄하하고 학습자들의 문학 감상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려 문학 능력을 저하시켰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독자의 역할을 중요하게 상정하는 수용이론과 독자반응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독자반응을 강조한 수용이론과 독자반응 이론은 개개인의 독
문학 창작이 지고한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엘리트주의를 벗어나야 한다. 문학은 언어문화 가운데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것이라야 한다. 문학교육이 정상적인 궤도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작품을 읽는 즐거움과 풍부한 느낌을 되찾아야 한다. 지나친 分析主義로 인해 작품에 대해 통합적
문학의 경우, 지적 영역보다 정의적 영역이 압도적인 성향을 보이며 문학이 정의적 요소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기인한다고 했다. 문학교육은 정의적 발달에 관계된 것으로 생각하며, 반면에 과학이나 수학 교육은 인지적 발달과 관계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논점을 확대하여 브룸은
독자 개개인에 기초한 다양한 해석을 인정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독자의 역할은 의미를 창조하는 능동적 참여자가 되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는 문학교육이 결국 학생들의 창의적․반영적 사고를 진작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독자반응의 초점은 단순한 문학 이론이나 언
문학작품을 읽는다는 물리적 행위는
시간을 소비한다. 작품의 첫 쪽을 여는 순간부터 마지막 쪽을 닫는 순간까지 어쨌든 시간
이 흐르기 마련이다. 이 시간 동안 독자의 내면에서는 수없이 많은 지적, 정서적 반응이
일어날 수 있다. 예컨대 하나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독자는 이리저리 을어진 조각들
교육에 과학적인 기초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중요하지만, 국어과 교육학은 그 성과들을 익히는 데에서 나아가 교수실험적인 연구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국어과 교육에서의 교육 내용과 교재 구성론, 교육 방법론에 시사하는 언어학, 국어학, 문학 연구 또한 기초적인 연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