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
(1) 세종의 법치주의와 현대사회의 법치주의 비교
세종이 남긴 유명한 어록 중에 “그대들은 법으로 말했지만, 나는 권도로서 행한 것이다.”(『세종실록』 14년 12월 17일)라는 말이 있다. 당시의 권력자는 법을 초월했다. 지금도 법의 편에 조금이라도 서면 법을 자신의 무기로 쓰고자 하는
세종실록』1년 2월 16일.
좌의정 박은은 세자 시절 세종의 스승이기도 했다.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하다. 집현전 설립을 통한 문풍 진작과 경사 강론의 확산에 대해서는 박은도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고 세종 또한 같은 생각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신하들의 건의도 있고 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있던
세종문화회관으로 명명
․어린이 회관 앞에 세종대왕의 동상을 제정
․한글전용정책을 추진
․1976-77년 세종대왕의 유택인 여주 영릉을 정비하면서 기념관을 신축하고 경역을 확장
․1976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를 지원해 『세종실록』30권을 완간함
현재까지도 국민들에게 가장 큰 존
세종대왕이 보여 준 리더십의 구체적인 실례들은 세종실록과 같은 잘 보존된 사료로 남아있으며 현대 연구자들은 이런 기록을 통해 그가 다양한 리더십 이론에 두루 부합한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경영과 정치를 막론하고 조직의 리더들은 그의 훌륭한 자질을 배우고 활용함으로써 조직 유효
세종대에는 어떤 발명품들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경제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려한다.
세종의 발명품
1) 측우기
측우기가 발명된 이유는 [세종실록]에서 찾을 수 있다. 세종 23년 8월 18일의 기사에 “호조에서 건의하기를, 각도 감사가 우량을 보고하도록 하는 법을 시행 중이나
세종과 정조에 대한 연구와 강의를 통해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하여 많은 독자들이 세종에 대해 쉽고 편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하고 있다. 세종실록의 기록을 토대로 세종의 조선경영과 리더십에 관한 사실적인 내용들만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세종이 펼쳤던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을 중심으로
세종23년) 8월에는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제작하여 이듬해 5월에 측우하는 제도를 정하여 전국 각지의 강수량을 과학적으로 측정하였다. 그리고 강이나 저수지 따위의 수위를 재기 위하여 양수표를 만들어서 농경에 효율적으로 적용시켰다. 세종실록에 아래와 같이 기록이 남아있다.
『 호조에서 아
세종실록 5년 12월 경오)
이 같은 학구열은 세종 2년 집현전 설치운영으로 나타난다. 세종은 ‘현명한 자로 임금을 세운다’는‘택현론’의 원칙에 따라 조선 제4대 임금으로 등극했다. 왕이 되기 전부터 국가의 흥망, 군신(君臣)의 사정(邪正)· 정교(政敎)· 풍속(風俗)· 외환(外患)· 윤도(倫道) 등 각
세종의 훈민정음 제정이 언제부터 구상되었고 착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세종 25년 12월조에 ‘이달에 상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제정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기록했을 뿐 그 경과에 대하여는 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