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시대의 종말을 가져와 “기독교 후 시대”를 열어 놓았다. 한편, 계몽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을 잉태하는 직접적인 전기를 마련하여 주었다. 박종태, “근대교회사” (총신대학교 출판부, 1995), p. 11-17.
계몽주의의 마지막 특징은 세속화다. 신학은 철학과 합리적인 사고에 의존하게 되었다. 계
Ⅰ. 서론
중세 이후 기독교의 역사 가운데 16세기로부터 약 1세기 동안 일어났던 종교개혁은 교회사 뿐 아니라 일반 역사에서까지도 근대사의 기점으로 삼을 만큼 그 비중이 크다. 종교개혁이 사람들의 의식에 획일화를 조장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상공업의 발전의 기여하고, 근대화를 부축인 점들은
기독교서회 1993 p.15] 바르트는 아버지가 교회사와 신약성서 교수로 있는 베른 대학에서 신학공부를 시작하였다. 특히 그는 칸트와 슐라이마허의 신학에 많은 흥미를 가졌다. 베른대학 시절 자유주의에 눈뜬 그는 1906년 베를린 대학으로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카프탄, 궁켈, 하르낙 밑에서 수학하였고, 1
교회사는 거의 Augustine의 신학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Augustine에 대한 주석과 해석에서 머물고 있다. Justo L. Gonzalez, 「초대 교회사」서영일 역 (서울: 은성, 1989), pp.327-343.
인류의 교사라는 칭송까지 받게 되는 Augustine. 기독교 교육사상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교육사상이 무엇이
교회의 상호관계의 역사에 대해 살피려고 한다. 우선 중세 유럽에서 로마교회와 함께 기독교 세계의 양대 중심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제국의 역사에서 종교와 정치가 서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피고자 한다. 이에는 중세 교회사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손꼽히는 동로마제국의
역사다. 현재 우리나라의 기독교 인구는 1,200만 명 추정하고 있다. 국민의 25%가 기독교인이다. 이것은 세계교회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급성장이다. 한국교회의 폭발적인 성장이 교회성장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면서 성장이 둔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부터는
교회와 protestant교회의 기독교계에서 각기 자기의 신앙의 관점에서 해석하려는 경향에서 나온 결과이다. 루터 연구는 일반적으로 광범위하지만 루터의 개성과 개혁운동의 동기에 대한 문제와 루터의 신학을 이해하려는데 그치고 있다.
오히려 루터가 종교개혁으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면 종교개혁가
기독교 사상사에서 긍정적인 면도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이단의 등장은 무엇이 이단이고 무엇이 이단이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는 판단 기준을 요구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사도신경과 일련의 신조들이 역사에 등장하였으며, 정경의 발전 역시 이단의 등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교회사적으로 볼
교회의 감독이나 그 대리자가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로마교회가 중세 교회사의 정치, 사회, 문화를 관장하게 되는 뿌리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학문에 있어서는 신학이 가장 중시되었으며 철학은 ‘문학의 종’이었다.
3. 기독교와 교육
(1)기독교 사상의 특징
① 주정주의 : 그리스의
역사적 지성의 합리성’ 위에서 ‘보편성’을 지니는 학문으로 성립시키고자 하였다. 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서울: 대한기독교 출판사, 1990), p. 25.
1951년 그는 하이델비르그에서 계속 신학 수업을 받았다. 당시 이 대학에서는 정통적인 루터주의 신학자인 Peter Brunner와 E.Schlink, 교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