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麗末에서 太宗代에 이르기까지 外交關係를 중심으로 -
1. 들어가며
朝鮮王朝는 明이 건국되어 고려와 通交를 시작한지 25년이 지난 1392年에 수립된다. 그러므로 조선초기의 대명관계는 高麗末 對明관계의 연장선 위에서 전개된다. 따라서 발표의 주제가 ‘朝鮮初期의 對明關係’임에도 원명교체기
고려속요 여음의 특징과 기능
서론>>
고려속요에 대한 간단한 이해
고려속요는 『樂章歌詞』, 『樂學軌範』, 『時用鄕樂譜』 등에 20여 수가 수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이밖에 『益齋集』, 『謹齋集』, 『高麗史』樂志, 『世宗實錄』樂志, 『琴合字譜』, 『樂學便考』, 『大樂後譜』, 『東國
三別抄는 원래 崔氏의 2대 집정자 崔瑀가 도적을 막고 치안을 유지한다는 목적으로 조직된 군대인 夜別抄를 군사가 많아지자 左ㆍ右別抄로 나누고 다시 崔沆 代에 몽골에서 도망쳐 온 자들로 구성된 神義軍이 합쳐 조직된 군대였다. 『高麗史』권81 兵志 1 兵制 元宗 11年 5月.
夜別抄는 高宗 19년에 처음
Ⅰ. 머리말
서기 1274년과 1281년 두 차례에 걸쳐 이루어진 몽고(元)의 일본원정(日本遠征)은 원정 주력군(主力軍)을 제공하고 많은 양의 전쟁 물자를 공급한 고려(高麗)의 일본원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高麗 측이 실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단지 高麗가 자주적인 입장에서 일본원정을
【고려 속요의 여음과 기능에 대한 고찰】
<목차>
Ⅰ.서론
Ⅱ.고려 시대의 시가
Ⅲ.속요
Ⅳ.여음
I.서론
고려시대에 창작된 시가(詩歌)로 주로 민중 사이에 널리 전해진 속요(俗謠)를 뜻한다. 넓은 뜻으로는 고려시가(高麗詩歌) 모두를 포함하며 ‘고려가사(高麗歌詞)’ ‘고려가요’, 줄여서 ‘여요(麗謠
高麗時代 土地制度 整備過程〉에 대한 연구는 高麗時代 經濟體制를 파악하는 핵심적인 요소라 할 것이다. 이에 本稿에서는 高麗 建國 初의 土地支配關係에 대한 파악을 시작으로 하여 田柴科體制의 整備過程 및 田柴科體制 下의 土地制度의 諸 類型에 대해 검토해 보고자 한다. 또한 高麗 末의 土地
高麗史』 卷 56, 志 10 地理 1 南京留守官 楊洲.
라고 하여 고려 이전에 국가와 시기에 따라 남경지역에 대한 명칭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1. 풍수지리설의 개요
고려시대 남경의 풍수와 관련하여 김위제(金謂)가 숙종 2년(1097)에 상소를 올린바 있다 신라말에 당에 들어가서 「秘記」를 써서 전한 도선(道
高麗史>>, 78권, 志32, 食貨1, 田制 祿科田, 7월의 조준상소
또한 동북면(東北面)과 서북면(西北面)은 원래 사전이 설정되지 않는 지역이었으나 지방세력과 중앙관리들에 의하여 임의로 사전이 설정되어 군수조달에 차질을 초래하는 등 폐해가 심각하였다. 당시의 사전은 이미 조업전(祖業田) 조업전(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