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양주별산대놀이의 유래
양주에서 처음 본산대를 초청해서 연희한 시기는 임란 직후인 1600년대 초로 알려져 있다. 연희자 김성대에 의하면, 양주에서 산대놀이가 시작되기는 임란직후인 1613년에 진어사(鎭禦使) 겸 목사인 유척기가 관민을 위로하기 위해 한양에서 본산대를 초청해, 매년 4월 8일, 5월
2. 가면극의 연혁
가면극이라 하면 탈놀이(가면을 쓰고 연희를 행하는 가면극의 일종)와 함께 산대놀이, 오광대, 야유, 사자놀이, 별신굿 놀이 등이 이에 해당된다. 우리나라의 가면극은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에 전하는 최치원의 향악잡영(鄕樂雜詠) 5수에 나타나 있는 오기(五伎)(金丸·月顚·大面
Ⅰ. 탈춤(가면극, 탈놀이)의 기원
이두현 교수는 탈놀이의 기원을 서낭제 탈놀이와 산대도감계통극으로 나누어 논의하였다. 하회별신굿탈놀이.강릉관노가면극 등 서낭제에서 놀았던 서낭제 탈놀이는 서낭제에서 기원하여 발전한 토착적 탈놀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서울 근교의 산대놀이, 해서탈춤,
1. 들어가며-해서가면극
황해도 일대에 분포되어 있는 가면극은 모두 탈춤이라 불린다. 이러한 해서 탈춤은 중국사신이 내왕하는 직북로에 위치한 봉산, 황주 등에서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또한 감영이 있던 해주에서 관아의 행사를 치루기 위해 전문적 놀이꾼이 산대희를 거행하던 영향으로 인
산대희설과 기악설은 첫번째의 입장이고, 농경의식설은 두번째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농경의식설은 좀더 구체적으로 ①농경의식설, ②농악굿 기원설, ③무당굿 기원설로 세분된다.
民俗劇의 祈願에 관하여 가장 먼저 제시된 설은 산대희설이었다. 산대戱에서 산대劇이 생기고 이것이 전
산대 잡극(=산대놀음)
→탈을 쓰고 큰길가나 빈 터에 만든 무대에서 하는 복합적인 구성의 탈놀음. 바가지 종이, 나무 따위로 만든 탈을 쓰고 소매가 긴 옷을 입은 광대들이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몸짓, 노래, 이야기를 함. 고려 시대에 발생하여 조선 시대까지 궁중에서 성행하였으나 후에 민간
산대도감극 계통과 그 외의 계통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산대도감놀이 또는 산대극 등으로도 부르는 산대도감극 계통에 속하는 연극으로는 경기지방의 양산별산대놀이와 송파산대놀이, 황해도의 봉산탈춤, 은율탈춤, 강령탈춤, 경남지방의 통령오광대와 고성오광대, 가산오광대, 동래야유, 수영야유 등
1-3 봉산 탈춤
배경 지식
탈춤이란?
탈놀이의 종류
봉산 탈춤이란?
탈춤(탈놀이)의 종류
경상도 - 오광대, 야류
중부지방 - 산대놀이
황해도 - ‘탈춤’
황해도를 해서(海西)라 불렀기에, 이 지방의 탈춤을 ‘해서 탈춤'이라 한다.
오늘날까지 명맥을 이어오는 탈춤은 봉산탈춤, 강령탈춤, 은율탈춤 세 가
산대도감이나 나례도감에 속한 재인이나 광대들이 산희는 물론 야희까지 담당함으로써 탈춤의 구성자가 다름이 아닌 아들이라는 가정이 가능케 한다. 산대도감계라고 한다면 야류와 오광대의 발상지로 알려진 초계 밤마리에서도 유랑예인집단인 대광대패가 여러 공연 종목중에 하나로 탈놀이를 놀았
산대놀이 지역과 연결되어 다른 지방 탈놀이의 영향 을 끊임없이 받아 가며 개량되어 은 것으로 믿어지는 이 봉산탈춤은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벽사신 앙적 성격이 강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종교적 요소보다 오락적 요소가 더 우세한 것으 로 보인다
그리하여 19세기 말기부터 해서탈춤의 대표적 놀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