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교 이단에 기웃거렸지만, 결국 마니교의 어설픈 교리 체계와 지도자들에게 실망하고 만다. 낙심한 아우구스티누스는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로 건너가서 수사학을 가르쳤다(383년). 한동안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懷疑主義)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밀라노 황실학교의 수
로마 사회는 말기로 접어들면서 전반적으로 사회 기강이 무너지고 퇴폐 풍조가 만연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는 키케로의 『철학의 권유』를 읽으면서 지적 세계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이 무렵 그는 마니교에 심취해 10년간을 마니교 신자로 보내면서 나중에는 존경받는 지위자의 지위에 오른다.
마니교 이단에 기웃거렸지만, 결국 마니교의 어설픈 교리 체계와 지도자들에게 실망하고 만다. 낙심한 어거스틴은 카르타고를 떠나 로마로 건너가서 수사학을 가르쳤다(383년). 한동안 아카데미아 학파의 회의주의(懷疑主義)에 빠지기도 했던 그는, 서른 살의 젊은 나이에 밀라노 황실학교의 수사학 교
마니교, 수사학, 철학 등 하나님의 진리가 아닌 다른 것에서 진리를 발견 할 수 없었음에 대한 회상과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엔 변하지만 하나님은 변하시지 않고 그 말씀의 영원하심을 고백하고 있다.
5-7장은 마니교의 허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과정, 그를 정신 차리게 만든 암브로시우스
마니교에 빠져들었던 것은 마니교가 기독교처럼 처음부터 신앙의 멍에를 강요하지 아니하고 우선 이성에 호소하여 진리를 천명한 다음에 신앙을 요청하는 매혹적인 약속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어거스틴이 깨달은 것은 현실의 인간이성이 연약하고 병적인 상태에 있다는 것이었다.
마니교에 빠지는 등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일부러 도둑질을 하는 등 선을 싫어하여 악을 자행하는 등 하나님과 먼 삶을 살았다.
어거스틴의 배움의 과정을 보면 초급교육과정을 마치고 문법과 고전문학을 배우기 위해 유학하였다. 그 후에도 지원을 받아 수사학을 공부하여 뛰어난
마니교에 빠져 9년을 허비했지만, 마니교에 속해 있으면서도 진리탐구에 대한 끊임없는 의지를 보이며, 여러 사람들과 토론하며 심적으로 많은 고민을 한다. 하지만,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하나님의 간섭으로 어거스틴은 로마로 이주해 암브로시우스와 심플리키아누스 만나서 그들을 통해서 자신이
까지 가지게 되었다.
진리를 추구하는 마음에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성서를 읽어 보았으나 성서의 문체가 조잡하고 그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 읽지 아니하였고 그 대신 진리를 설파한다는 마니교에 빠져 들게 되었다. 마니교도가 된 어거스틴의 모습을 본 어머니는 슬픔과 분노를 금치 못했다.
마니교의 사상의 매력에 빠져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마니교의 허위를 발견하고 수사학을 배우게 되는데 수사학에 재미가 붙은 그는 자신의 교만함의 즐거움으로 수사학 교수가 되기도 한다.
또한 4권과 5권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철학을 이해함으로 여러 가지 철학적인 논리
마니교에 빠졌던 일을 이야기하는데 그에 대한 회한과 함께 마니교의 사상을 비판하기도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죄악들에 대해서도 심도 깊게 그리고 진솔하게 고백한다. 어린 시절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죄부터 시작해서 거짓말, 배서리, 더 나아가 정욕에 빠져 음탕한 생활을 했음을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