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진적이고 강력한 개혁사상을 가지고 있던 북인계열을 몰락시킨 인조반정 이후 정권다툼은 남인과 서인으로 좁혀졌다. 그중에서도 우암 송시열은 율곡 이이에서 사계 김장생을 거쳐 내려오는 서인의 정통 학맥을 이어온 인물로서 주목할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우암이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을
공노비의 경우 국가기관에, 사노비의 경우 소유주에게 그 소유권이 귀속되어 있었다. 이러한 법규에 따라 내수사를 비롯한 각 궁방에서는 자녀가 없이 죽은 무후노비(無後奴婢)의 재산을 속공하였는데, 이는 궁방전 확대 요인의 하나로 언급될 정도로 상당한 양에 달했다.
이와 같이 조선 후기
法規範 체계인 慣習法으로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또한 사회가 분화․발전함에 따라서 成文法의 필요성이 생겨나고, 그 사회의 中心勢力은 慣習法의 成文化 내지는 그 사회의 필요성에 따라 成文法을 의식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成文法이 완비된 오늘날에도 成文法이 규율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