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전반기에는 성리학에 대한 깊은 연구 결과로 이기론·사단칠정론·인심도심설 등 이기심성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어 이를 둘러싼 논쟁과 학문적 심화과정을 통해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었다. 이황과 기대승(奇大升)간의 사칠논쟁, 이를 둘러싼 성혼과 이이와의 우율논변(牛栗論辨)이 벌어
16세기에 이르러 조선의 성리학은 관념적인 이기론 중심으로 발달하였다. 당시의 철학적 조류는 크게 두 계통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경덕을 선구자로 하면서 경험적 세계를 중요시하는 주기론이며, 다른 하나는 이언적을 선구자로 하면서 원리적 문제를 중요시하는 주리론 이다. 이 두 학자의 뒤를
사칠논쟁의 학문적 의의
퇴계와 고봉이 주고 받았던 사칠논쟁은 학문적 진지성과 자신의 심성론적 논거를 규명하는 분석의 치밀함에서 한국유학사의 학문적 논쟁에 모범이 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인간을 본질적으로 선한 존재라고 규정한 맹자가 있고, 그 반대라고 주장한 순자도
Ⅰ. 序言
율곡은 한국을 대표하는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요 16세기 조선조 성리학에 있어서도 퇴계와 더불어 쌍벽을 이룬다. 율곡의 이기지묘(理氣至妙), 기발이승(氣理乘乘), 이통기국(理通氣局)등 그의 심오한 성리학적 이론체계도 훌륭하지만 투철한 역사의식과 해박한 식견에서 창출된 그의 경세
理通氣局說)'을 제시하였다. 이이의 생애는 태어나서 29세까지를 성장기, 30세부터 49세로 사망할 때까지를 사환기(仕宦期)로 구분할 수 있다.
서문, 시화에 뛰어난 신사임당은 이이의 초기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이는 8, 9세부터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1548년(명종 3)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