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李滉)을 방문하였다. 그해 별시에서 <천도책(天道策)>을 지어 장원하고, 이 때부터 29세에 응시한 문과 전시(殿試)에 이르기까지 아홉 차례의 과거에 모두 장원하여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 일컬어졌다. 29세 때 임명된 호조좌랑을 시작으로 관직에 진출, 예조·이조의 좌랑 등의 육조 낭관직,
이황과 이이였다.
이황은 주자서절요, 성학십도 등을 지어, 주자의 이기 이원론을 더욱 발전시켜 주리 철학을 확립하였다. 그의 사상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의 성리학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주리 철학은 대체로 향촌에서 중소 지주적 경제 기반을 가진, 생활이 비교적 안정된 사림들이 발
12인 중 가장 선호하는 철학자 한 명을 선택하여 그 철학자의 중심사상을 정리(A4 1쪽 분량)한 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열을 올리는’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동양철학이, 또는 동양철학자의 어떠한 주장과 이론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각자의 관점과 견해를 개진해 보기로 하자.
인정함으로써 신의 관념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것은 타일러의 학설은 주지주의적(主知主義的) 종교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비판을 받기도 하고, 또한 원시인에게서 꿈이 그처럼 중대한 경험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논란도 있었으나, 이원론(二元論)의 사고양식을 설명하는 양식으로서 아직도 그
Ⅰ. 개요
갈암은 성리학에 있어서는 철저한 주자학 정통주의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학의 유일적 정통주의- 의 재흥을 모색하였다. 경세론에 있어서는 당시 성리학자의 비경세유용적인 학문경향을 비판하여 경세적 측면이 강했던 선진유학의 정신을 재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의 성리학은 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