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생애
정양용(1762∼1836)은 한국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로서 경기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자는 미용(美鏞), 송보(頌甫), 호는 다산(茶山), 여유당(與猶堂)인데, 그가 태어나던 해에는 사도세자가 억울한 죽음을 당하고 이를 둘러싼 노론 중심의 벽파와 남인 중심의 시파사이에 갈등이 노골화되고
觀) 등의 일련의 과정을 거쳐 국헌(國憲)이 되는 타락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하지만 경학의 초기 순수한 의도까지 부정해서는 안 된다.
2. 경학의 성립과정과 동중서의 ‘천인삼책’
건원(建元) 원년, 무제는 고금의 왕의 일에 관련된 예에 능한 사람들, 즉 유자(儒者)를 천거하여 문치(文治)를 열어가려 했
經學)이라고 칭하게 된다.
(2) 한․당 유학
① 훈고학(訓詁學) : 한나라 때는 경전의 주석(註釋)을 중시하는 훈고학이 발달 하였는 데, 지나치게 자구(字句)의 해석에 매달려 도덕적 실천이 도외시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② 문장의 중시 : 위진 남북조와 수․당 시대를 거치면서
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저서에는 《태극도설(太極圖說)》 《통서(通書)》가 있으며, 수필 《애련설(愛蓮說)》에는 그의 고아한 인품이 표현되있다. 남송의 주자(朱子)는 염계가 정호(程顥) 정이(程燎) 형제를 가르쳤기 때문에 도학(道學:宋代의 新儒敎)
조선왕조가 성립되고 태조는 즉위교서를 통해 첫째, 문무 양과를 균형적으로 운영한다. 둘째, 고려 과거제의 유픙인 座主門生制와 國子監試를 없앤다. 셋째, 관학을 육성하여 과거제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다는 내용을 발표하였다.
주자학을 신봉하는 신진 유학자들은 詞章을 배격하고 經學을 중시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