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암이 율곡의 학문을 비판한 [栗谷李氏論四端七情之辨]은 어떠한 배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까? 현상적으로 볼 때 [율곡이씨논사단칠정지변]이 경신환국을 통해 서인에 의해 남인이 정치적 박해를 당하고 있던 시점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당시까지의 그의 정치적 행로와 연관시켜 본다면 그의 율곡 비
Ⅰ. 개요
갈암은 성리학에 있어서는 철저한 주자학 정통주의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학의 유일적 정통주의- 의 재흥을 모색하였다. 경세론에 있어서는 당시 성리학자의 비경세유용적인 학문경향을 비판하여 경세적 측면이 강했던 선진유학의 정신을 재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의 성리학은 순
설정하지 않았다. 하늘과 하나인 사람은 사물에 대응하고 일을 꾸미더라도 당연히 고요한 본래의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실천론적 당위를 도출하였으며, 이 당위의 실천은 아직 다 상실되지 않고 남아 있는 본래성을 굳게 지키고 다시 그것을 확충함으로써 가능한 것으로 설명된다. 이른바 四端을
행하라.
㉢학문은 참고 끝까지 한결같은 노력이 계속되어야 한다.
㉣독서할 때는 허심하여 딴 생각을 하지 말고, 본문에서 그 현제의 뜻을 찾도록 하라는 것이다.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서 사물의 참된 뜻을 찾아라.
㉥학문을 하는 자는 자기주장만을 일삼지 말고 남의 것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삼아 사서오경(四書五經)을 준봉(遵奉)하는 학문이다. 공자가 죽은 후 맹자는 인의(仁義)를 내세워 성선양기(性善養氣)를 설하는 동시에 인정(仁政)의 필요성을 주장하였고, 순자(荀子)는 예(禮)를 주장하여 성악설을 내세우는 동시에 권학(勸學)의 필요성을 주장하였으나 전국 시대 말기에 이르러 이 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