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암이 율곡의 학문을 비판한 [栗谷李氏論四端七情之辨]은 어떠한 배경에 의해 이루어진 것일까? 현상적으로 볼 때 [율곡이씨논사단칠정지변]이 경신환국을 통해 서인에 의해 남인이 정치적 박해를 당하고 있던 시점에 지어졌다는 사실을 당시까지의 그의 정치적 행로와 연관시켜 본다면 그의 율곡 비
Ⅰ. 개요
갈암은 성리학에 있어서는 철저한 주자학 정통주의 -엄밀히 말하자면 퇴계학의 유일적 정통주의- 의 재흥을 모색하였다. 경세론에 있어서는 당시 성리학자의 비경세유용적인 학문경향을 비판하여 경세적 측면이 강했던 선진유학의 정신을 재건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또한 그의 성리학은 순
Ⅰ. 주자학(성리학)의 흐름
중국의 성리학에 한국에 도입된 것은 주자 사후 100여년이 지나서 원나라로부터 이루어 졌다. 安珦이 도입한 성리학은 백이정, 우탁, 이제현, 이인복 등에 의하여 연구되었으나, 충분히 소화되어 토착화하기 시작한 것은 牧隱 李穡에 이르러서였다. 목은 이색에 의하여 수용
Ⅰ. 율곡이이의 이기론
율곡은 理는 하나 뿐으로 무형무위한 특성에 의하여 불변의 보편자의 성격을 가지는 반면, 氣는 유형유위한 특성으로 개별적 차별상을 가진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무형과 유형의 외적 차이는 이의 통용성과 기의 국한성을 설명하는 기준이며, 또한 무위와 유위의 작위성을 근
율곡 우계는 모두 사단을 순선하다고 여겼으나 주자는 사단에도 불선한 점이 있다고 여겼다. 알지 못하겠도다. 네 분 선생님들은 주자의 이 말을 보지 못했는가. 사단이 어떻게 불선할 수 있는가. 사단도 기발이이승하기 때문이다. 발할때 그 기가 청명하면 이도 순선하지만 그 기가 혼탁하면 이도 그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