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휘트필드의 칼빈주의적 감리교, 영국 국교회 복음주의 교회로 인해 비로소 복음주의 부흥 운동이 거대한 물줄기로 등장했다. 1729년 옥스퍼드에서 웨슬리 형제와 커크햄, 모건 등의 학생의 모임은 ꡒ신성 클럽ꡓ이라고 불렸는데 마침내 어떤 학생들이 ꡒ메소디스트ꡓ라는 정곡을
감리교회는 다음의 다섯 가지 자료를 그 교리의 기반과 표준으로 삼고 있다. 즉 에큐메니칼 신조의 하나인 사도신경, 종교강령 25조, 웨슬리의 표준설교, 웨슬리의 신약주석, 그리고 한국의 교리적선언 등 이다. 따라서 감리교인들은 이 다섯 가지 자료에 대해서 정통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렇게 주장할
감리교회'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 되었다. 당년 31세의 웨슬리는 15년 동안 옥스포드 생활을 하여왔다. 이제는 주님을 위하여 좀 더 열성 있고 희생적인 활동을 하려는 생각이 났다. 그리하여 그는 1735년에 선교사로 자원하여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 죠지아주로 가서 아메리칸 인디언에게 선교를
선교계획에 있어서 로마는 전략적인 요충지였으므로, 그는 로마 교회의 협력을 받아야 했다.
로마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리적인 내용들도 바로 이러한 동기에서 기록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로마 교회로 하여금 하나님의 위대한 은혜와 무한한 자비를 이해하게 하며, 이 은혜와 자비가 너무
운동에서는 분리의 교리를 주장할 뿐 아니라 1차 분리를 넘어 2차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신학적 맥락에서 구 프린스톤 신학 전통의 마지막 주자 메이천은 1920년대와 1930년대 근본주의 대 근대주의 논쟁에서 신학적 자유주의에 대항하는 보수 연합세력의 결집인 근본주의 운동 지도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