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세유용적인 학문에 대한 관심과 이해 그리고 실천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형이상학적 성격이 농후한 주자학퇴계학의 유일적 정통주의를 지향하면서도 사회실천적 성격이 강한 경세학의 추구라는 양자의 상호 모순되는 듯한 면을 극복하기 위해 양자를 포섭할 수
관(太極觀)
이언적에 있어서 태극이란 만물의 근원이자 모든 변화의 원인이며, 따라서 그것을 영원불변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태극이란 노자의 ‘무(無)에서 나와 유(有)에로 들어간다’는 주장이나 불가의 ‘공(空)’과는 다른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태극을 이기설과 연관시켜 해석하면
관(州學 敎官; 지방 학교 선생)이 됨, (바로 이 시기에 경주 기생과의 사이에서 이전인(李全仁)을 낳았다.) 27세 - 부정자(副正字)를 거쳐 정자(正字)에 임명됨. 31살 때에는 박사가 되어 홍문관 경연사(經筵司)와 춘추관 기사관을 겸했다.
이해에 왕명에 의해 그 이름에 ‘언(彦; 선비)’ 자를 더하게 되었
이제 말씀하시기를, “下學上達이란 어린애 혹은 이제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나 가르쳐 보인 것이며, 뛰어난 사람(豪傑之士)에게는 이와 같지 않다.”라고 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저로서는 공자님을 예로 들까 합니다. 사람이 태어난 이래, 生而知之한 인물로 공자만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그가
유형원을 계승하면서 토지 및 행정기구 등 사회제도의 개선에 치중한다는 측면에서 일명 '경세치용학파 經世致用學派'라 지칭하고, 지배계층인 노론계열의 북학파가 상공업의 유통과 일반기술의 발전 등 물질문화의 발달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용후생학파 利用厚生學派'라 지칭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