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분벽화의 경우 보존상 여러 가지 어려움을 야기시킨다. 화장지법에 의한 벽화는 그림의 선명도가 떨어지는 흠이 있다. 그러나 안료의 산화와 퇴색이 상대적으로 덜하여 오랜 시일이 흘러도 처음의 명도와 채도가 잘 유지되는 편이다. 제1기와 제2기로 분류되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는 대부분 이 습지
고분의 벽화에 4줄로 된 거문고가 그려져 있어 진나라 이전, 그러니까 4.5 세기 이전에 고구려에 이미 거문고가 있었다고 추측한다. 거문고라는 이름도 '현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악기라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후 거문고는 신라에 전해져서 옥보고가 지라산에 들어가 5
등으로 불리워 오다 태권도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국 시대에 들어와서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대내적으로 세력 확장을 위한 영토 분쟁과 민족 통일을 위한 각축전을 벌였으며 대외적으로는 외적에 대한 민족적 의식의 각성을 촉진시키기 위 해 무술을 중심으로 한 체육 활동이 성행하였다.
고구려인의 기상은 그대로 미술에 반영되어 패기에 찬 미술을 이루었다.
회화는 만주 집안현 통구 지방과 평양 일대 옛 무덤의 벽화와 유물을 보면 고구려 미술이 확실히 대륙적이고 남성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옛 무덤 속에는 현실(玄室)과 연도에 벽화와 천정화가 그려져 있
고구려와 중복되는 지역의 통치와 각 지방에서 외교시에 사용했던 교통로를 통해 발해의 지방통치제도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문화면에서는 발해건축 중 온돌과 고분을 통해 그 안에서 우리 민족이 이루어 놓은 공통성을 찾아내고 나아가 발해 문화유산의 우수성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새로운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