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형태인 여항문학을 형성하게 된다. 그에 따라 이들을 지칭하는 ‘여항인’ 또한 ‘서울의 일정한 지식을 소유한 여정(閭井) 사람으로서 일정한 세력권을 형성하고 여항문학을 창출하는 주체’라는 의미를 강하게 지니게 된다.
2. 가객과 가객시조
여항인은 활동 영역에 따라 음악 부문의 ‘악
중인층이 대두되게 되었고, 시조의 향유층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시조의 저변 확대 이면에는 가객들의 노력이 숨어있었다. 이들은 가집을 편찬하고 전문적인 연행문화를 형성하고, 시조 음악의 변화를 주도한 사람들이었다.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본고에서 살펴볼 중인가객시조의 범위 설정을 명
중인도 양반이 아니므로 서민이다.’라는 견해가 팽배하여 크게 진전되지 못하였다.
최동원은 사설시조 역시 중인 가객들이 중심이 되어 발달시킨 문학이라 주장한다. 물론 중인 및 일부의 양반계급의 참여가 있었지만 그 주역이 서리 출신의 중인가객들이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최동원 『고시조
시조문학을 꽃피우며 주도해 나간 중심 향유층이다. 이들은 고려 후기부터 유가적 세계관을 經世의 이념으로 삼아 새로운 정치세력으로 등장해 조선의 건국을 주도한 층으로서, 조선왕조 역사 내내 조선의 정치, 사회, 문화를 좌우해 온 지배세력이다. 이러한 만큼 이들이 산출한 사대부시조는 가객시
시조사적인 면에서 전체적인 조망을 하고자 하였지만 평면적인 연구태도를 견지하여 시대적 변화와 그 변화에 대응하는 문학의 위상을 밝히지는 못하였다. 후기시조의 전반적인 성격에 관한 논의에서 이룩된 중요한 결과물은 특히 18세기에 중요 작자층으로 대두한 가객에 관한 연구인데, 연구자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