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개요
한국의 TV CF는 현란한 영상만 남았을 뿐 광고의 메시지나 주제는 상실해 버린 채 공허한 멋내기 경쟁에만 빠져들고 말았다. 칸느 광고영화제 참가자들의 우리 광고에 대한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불행하게도 세계 각국의 크리에이터들로부터 여지없는 야유와 조소를 받아 우리의 현주소를 뼈
광고를 내보내면서부터 시작한 공익광고는 광고의 사회적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 결과 1988년 7월, 공익광고협의회가 단순 자문기관에서 자율적 심의․의결기관으로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매년 공익광고에 대한 수용자 반응조사를 실시하여 그 조사결과를 공익광고의 주제선
광고 향상 자문위원회가 공익광고를 도입 시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후 그 해 12월 5일 KBS 2TV를 통해 저축으로 풍요로운 내일 이라는 공익광고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 88년 공익광고협의회가 설립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 당시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나타낸 반응은 『조용하고 차
정치 캠페인이나 광고 캠페인에 관한 효과연구였지 공익광고 자체를 다른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서도 공익광고 자체에 대한 학술논문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연구되어진 것은 주로 공익광고 효과와 관련된 것이었다. Brayant Boutwell은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미국 텍사스(州)에서만도 매달 라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