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는 종래의 7種에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중심이 되어 편찬한 1種이 추가되어 모두 8種이다. 그런데 이 교과서들이 모두 우리나라와 관계된 부분을 대폭 삭감하거나 은폐 또는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일본 국내는 물론이고 한국․북한․중국 등으로부터 거센 비판
일본의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역사교과서에 대한 철저한 검열을 시작하였다. 이른바 ‘교과서 공격’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ⅱ 역사왜곡의 경과
1955년 우익진영은 역사교과서의 ‘침략’ 기술을 문제 삼아 제1차 교과서 공격을 시작하였다. 당시 문부성은 ‘교과서조사관 제도’를 만들어 검정제도
역사교과서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통신사에 의한 조선으로부터의 문물 전수에 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고 이를 오로지 양국간의 인적 교류로 등치하여 서술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국으로부터의 문물 전수가 아닌 인적 교류 차원으로 보려는 일본측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통신사는 에도시대
역사교과서』의 역사왜곡의 큰 흐름은 대체로 고대 일본의 한반도 지배설, 고대 한국의 일본 조공설, 임진왜란의 원인 합리화, 한국 강점의 정당화, 종군위안부의 내용 누락, 남경대학살의 내용 누락, 조선인․중국인의 강제 동원 내용 누락 등이 있다.
즉, 역사교과서 왜곡은 그 서술이나 역사인식
역사를 서술하겠다는 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후소샤 교과서는 일본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고, 팽창정책과 침략정책을 긍정적으로 서술하는 등 철저히 우익적 관점에서 기술함으로써 역사를 왜곡한다. 우리가 익히 알다시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파문의 진원지이다. 한반도 식민통치가 조선 근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