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역시 이러한 시대의 영향을 받아 인간이성의 역할과 자유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한 18세기 영국의 신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합리주의, 낭만주의, 이신론과는 달리 인간본성으로서의 이성이 아니라 선재적 은총으로 회복되는 이성을 말하며, 믿음은 전제한 이성적 활동에 의한 신학함을 말한다. 이
운동의 발흥은 근대사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2. 근대 교회사 출발과 시대구분 문제
일반 문화사적으로 볼 때 근대는 르네상스 휴머니즘을 기점으로 삼는다. 그러나 종교개혁사와 구분되는 교회사적인 근대의 시기는 학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대륙과 영국의 종교개혁은 선을
신학자들의 신학자’ 였다.
이 시기에 개최된 웨스트민스터 총회는 청교도 운동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의회는 이것을 통하여 영국 국교회와 로마 천주교회의 교리, 예배, 교회 정부 형태에 대한 개혁을 시도하였던 것이었다. 오덕교, 장로교회사, 수원: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6. 208-224.
그리고
가지고, 그러나 같은 정신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서로 동역할 수 있도록 길을 인도하였다. 18세기 감리교 부흥기에는 웨슬리와 휫필드가 동역을 했고, 19세기 앵글로 가톨릭 운동에는 퓨지와 뉴먼, 케블이 함께 있었다.11) 필립사프, 교회사 전집 독일 종교개혁, 박종숙 옮김, 크리스찬 다이제스트, p. 165.
신학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학교는 지성적 목회자들을 배출하는 명문신학교이며, 그는 특히 신학교 시절부터 웨슬리적 부흥운동을 좋아하였다. 그 당시 드루신학교는 설립된지 15년 밖에 안 되었기에 교단신학교로서의 깊은 개인적 경건과 종교적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아펜젤러는 신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