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도 동일하게 들어야 할 것이다.
또한 목회서신에 등장하는 이단은 ‘혼합주의적’ 경향을 지닌다. 이는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 불일 듯 일어나는 ‘종교다원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이 이름으로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는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다. 왜
종교재판을 하였다고 비판하는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복음주의교회와 신학자들은 이 신학이 교회와 신학에 미치는 영향력을 생각하면서 불안한 눈을 감추지 못하고 치리하는 입장을 지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 이유는 종교다원주의가 궁극적으로 모든 종교에 다 구원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기독교를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이 도리어 다원화, 세속화된 사회를 개혁시켜야할 과제가 바로 우리에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법은 세상의 법과는 틀리기 때문에 세상의 이론에 하나님의 법을 대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오직 그 분만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
. 그는 수가성 여인에게는 그녀가 믿는 신이 불완전함을 설명하고 그녀를 사랑으로 그가 계시한 완전한 신앙으로 인도했다. 그는 타종교인에게는 아주 인격적이었으나 진리에 대하여는 분명히 ‘노’라고 하였다. 그는 유대교를 정죄하였다.”고 면서 초대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원리를 밝혔다.
종교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기독교의 독특성이 변질되거나 포기되어야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것이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할 때 그 구원이 기독교의 구원과도 같을 수는 없다. 구원을 성취하는 방법에서 기독교와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복음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