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같이 문학의 순수성을 옹호하고, 문학을 사회 변동과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태도와 시문학의 본질적 영역에 대한 탐구가 함께 존재한다.
본고는 이러한 1960년대의 사회적 배경 속에서 활동한 시인들 중 서정주, 김춘수, 김수영, 박재삼, 박남수. 김광섭을 중심으로 당시의 다양한
년대에 들어와 전환점을 맞는다. 1960년에 일어난 4·19혁명과 이듬해 일어난 5·16 군사정변은 정치 사회적인 측면을 비롯한 모든 영역에서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인식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따라 한국문학도 사회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비판하는 현실 참여의 색깔을 띠기 시작한다.
1960
과정을 거치면서 자유시는 처음 1910년대 중반의 아마추어 시인들, 예컨대 석천(石泉, ?-?,〈이별〉,1914), 김여제(金輿濟, ?-?, 〈산녀(山女)〉,1915) 등에 의해 처음으로 쓰여졌다. 그러나 이는 곧 전문적인 시인들에게 널리 확산되기 시작한다. 1910년대말의 김억(金億, 1896- ?), 황석우(黃錫禹, 1895 - 1960),
1960년대의 「등신불」(1963), 「까치소리」(1966)로 이어진다. 소설 「까치소리」는 한국전쟁이라는 시대성을 작가의 독특한 운명관으로 채색하고 있는 작품인데 죽음, 불안, 삶에 대한 욕구, 분노, 죄책감 등 전장에서 볼 수 있는 병사들의 복합적인 심리상태와 그것의 귀결점을 상황적으로 암시하는 까
중심으로 전조선문필가협회(1946.3.13)를 창설하고, 문학인으로서 민족주의 국가건설에 공헌하고 민족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가자는 강령을 채택한다. 이 단체에 가담하고 있던 조연현,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곽종원 등이 별도로 조선청년문학가협회를 조직하여 활발한 문학활동을 전개하게 되자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