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그해 12월 조선 통감부를 설치하여 지배체제를 강화하였으며, 또한 헤이그 밀사 파견을 구실삼아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는 등 본격적으로 우리의 국권을 탈취하려 했다. 이러한 제국주의 침략에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민족의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애국계몽운동
한 시도이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이 중심이 되었고 그들은 문벌을 폐지하여 인민 평등의 권을 제정하고 사람으로서 관을 택하게 하여 관으로서 사람을 택하게 하지 말 것이라는 개혁 조항을 내세웠다. 이는 그들의 개혁 내용이 단순하지 않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민중의 지
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을 펼쳐 이상향을 건설하고자 하였으므로 3.1운동을 전후한 시기에 그의 활동에는 그 방법과 성격상에서 차이를 보인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남강선생의 행적을 3.1운동 전,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시기별 그의 활동에 대한 해석과 남강 선생을 연구한 논문 비교를 통해 남강 이
운동의 주체들은 국권이 미약하게 된 원인을 민족의 실력이 부족한 데 있다고 인식하고, 학교 설립을 통한 근대교육의 보급, 식산흥업운동에 의한 산업의 발전을 통해 실력을 쌓고 자강을 이룩하면 국권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같은 운동의 토대는 1890년대 말에 전개되었던 독립협회와
운동은 대개 세 갈래의 학생 조직이 이 계획에 참여하였다. 공산주의 계통의 노공계, 전문 학생을 중심으로 한 사직동계, 중앙고보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통동계 등으로 이들은 각기 다른 양상을 띠면서 만세운동을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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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독립운동과 애국계몽운동애국계몽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