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글은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공자의 생활난>의 구절을 가장 큰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이는 ‘나는 바로 보마’의 6자가 김수영의 모든 시의 정신이자 좌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평론가 김현은 이를 ‘나의 반란성’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해독하고 있다.
혁명을 계기로 민중의 의식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게 되어 참된 의미에서의 근대성을 획득하려는 방향에서 민족․민주 운동의 주된 내용을 형성하게 된다.
이른바 ‘6․3사태’로 통칭되는 1964년의 한일회담 반대투쟁은 일제에 대한 민족적 저항인 동시에 5․16 군사정권의 반민족성을
시의 기법이나, 역사 현장에서의 시인의 자리보다는, 문학과 삶의 일치를 추구했던 그의 내면고찰을 통해 그의 시세계를 들여다보도록 하겠다.
Ⅱ. 본론
1. 김수영의 삶에 대한 인식
1960년대 대표적인 참여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는 김수영에게 보이는 가장 두드러지는 의식은 “진정한 나”가 되고
시인들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인간과 현실에 대한 폭넓은 성찰을 행하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로서 식민지 시대를 훨씬 뛰어넘는 작품들을 발표한다.
1. 서정주 혹은 불교적 인생관의 천착
서정주는 한용운과 함께 불교에서 그 시적 영감을 얻은 일급의 시인이다. 그의 초기 시에는 불교적인 달
시인이다. 영랑의 시적 비전은 식민지 현실에 대한 관심보다 유미탐구에 있다. 초기 시에서 영랑은 ‘내 마름’, ‘소색이는’, ‘얄개’, ‘실비단 하늘’ 등 새로운 조어와 전라도의 사투리를 발굴하여, 거기에다 그의 독특한 언어미와 전통적 판소리 율감의 심화 등을 더하였다. 영랑시의 또 다른 특